[남자 읽기] 이 사람과 30년 더 살 생각하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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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아내의 강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올해로 50세를 넘긴 M씨는 흔히 말하는 '사'자 직업을 가진 중년 남성이다. 안정된 직업 덕분에 살림도 나날이 늘었고 아이들도 잘 자라 지금은 모두 괜찮은 대학에 다닌다.

아내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후 친구 소개로 만났고 1년간 사귄 뒤 결혼했다. 지난 23년간 결혼생활을 하면서 살림꾼인 아내 덕분에 집안 걱정 한번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이점에 대해선 그도 아내에게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M씨의 마음 속은 아내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여성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상냥함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언제부터인지 무슨 말이건 곱게 대답하는 법이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큰소리치기도 예사다. 처음 몇 번은 화를 냈지만 아내는 '당신이 그래봤자 나는 눈 하나 깜빡 안 한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결국 별다른 소득 없이 아이들 앞에서 부모 싸우는 모습만 보이는 것 같아 그는 가급적 아내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내에 대한 애정은 점점 식어만 갔다. M씨의 사랑이 사라질수록 아내의 강짜는 점점 더 심해졌고 심지어 남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손상하는 말을 할 때도 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 없는 가정인 듯 싶지만 정작 가장인 M씨 자신은 집안에 들어가기조차 짜증스러울 때가 많다. 아이들 때문에, 사회적 체면 때문에 그럭저럭 지내지만 M씨 마음은 늘 공허하고 때론 암담하기조차 하다.

M씨가 처한 상황을 해결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어떤 제도건 경쟁 없이, 사회적 보호장치가 견고할수록 구성원들은 가장 손쉽고 편한 상태에서 안주하고 싶어한다. 결혼은 대표적인 예다.

남녀가 일단 결혼을 통해 부부가 되면 미우나 고우나 내 아내.내 남편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상대방이 나를 무시해도, 조심성 없이 기분 나쁘게 행동해도 큰 죄를 짓지 않은 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줄이는 것 이외에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 남이라면 결코 그냥 넘기지 않았을 일도 부부라 눈감아 준다. 처음 한 두 번 이런 식으로 그럭저럭 넘기다 보면 관성이 붙게 마련이고 문제 해결은 점차 어려워진다.

따라서 처음 문제가 발생했을 때부터 서로간에 대화를 통해 해결책과 합의점을 찾는 게 가장 좋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M씨는 이제라도 아내와 진지한 대화를 통해 상황 변화를 시도해봐야 한다. 우선 자신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부터 찾아내야 한다. 사람 관계는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점을 찾고 인정한 뒤, 지금의 상황은 자신과 아내 모두에게 불행이라는 점을 아내가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혼자 힘으로 아내와의 대화가 벅찰 땐 성장한 자녀나 다른 가족, 혹은 전문가의 도움이라도 청해야 한다.

M씨가 평균 여명만큼 산다면 앞으로 30년의 세월이 남아 있다. 사회 활동도 점차 줄어들 노후를 지금처럼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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