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재공개」에 의원들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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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차때대로 공개하자니 실사 두렵고/시가로 할 경우엔 불성실신고 드러나/민자 일부/민주 재산가들도 불안감 팽배… 제2파장 걱정
재산공개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바 있는 여야의원들이 또다시 8월까지 해야할 재산공개를 앞두고 마음이 편치않다. 지난번 재산공개는 대통령의 재산공개에 이은 자발적 형식의 공개였고 제재도 「윤리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재산공개를 강제로 규정하고 허위등록한 의원은 제명까지 할 수 있는 「공직자의 재산등록 및 공개 등에 관한 법률」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만들어져 시행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서화등 동산 골칫거리
○…대부분의 민자당의원들은 재산을 재공개해야 한다는 사실에 달갑잖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산총액 10억원이 채 안되는 C모의원까지 『한번 벗으면 됐지 또 벗으란 말이냐』고 발끈할 정도다. 지난번 공개때 워낙 혼쭐이 났기때문이다. 민자·민주 양당의 개정안에 적잖은 차이가 있어 논란이 예상되자 은근히 쾌재를 부르며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없진않다.
한 중간당직자는 『김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해 이번 국회에서의 처리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망하면서도 『법이 통과되면 시행령을 만들어야 하는데 한두달은 필요할테고 그러다보면 연말을 넘길 수 있지 않을까』라고 희망사항을 피력했다.
의원들이 이처럼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장롱」속의 내밀한 내용물을 만인앞에 내보여줘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싫은데다 이런 저런 시비에 휘말리거나 꼬투리잡힐 개연성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1차 공개때는 대부분이 금융자산과 골동품·서화 등 동산을 빼놓아 이번에 이를 포함시킬 경우 재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게 돼있다. 부동산값을 낮게 잡는 등 축소공개한 일부 의원들은 공시지가·기준시가 등에 맞춰 신고할 경우 재산이 2∼3배로 늘어나게 돼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P의원은 『여러명의 친척 명의로 된 종중땅을 지난번엔 신고를 안했다』면서 『서울근교의 신흥개발지역이라 등기부대로 10분의 1 지분만 쳐도 수억원대에 이른다』고 대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K의원은 최근 주위사람들에게 『파문이 이토록 커질지 몰라 땅값을 적당히 줄여 공개했는데 1차때대로 공개하자니 실사가 두렵고 제대로 고칠경우 1차때의 불성실신고에 도덕적 비난이 쏟아질게 뻔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민주계의 한 의원은 『남은 기간동안 1차 신고내용과 비슷하게 맞추기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될 것이기 때문에 재공개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1차때 물의를 빚은 의원들도 문제재산의 처분에 나서고 있다. 이 모의원은 임야 20만평에 나무를 심으면서 조림사업의 특성때문에 아들명의로 해둔 것이 사전상속·무연고지 투기 등으로 오해를 받자 재산공개 파동직후부터 자발적으로 기증하기로 마음먹고 기증할 곳을 찾고 있다. 동산이 많은 의원들의 고민도 적지않다.
『지난번에 보석·골동품·그림종류들을 공개하지 않은 의원들은 고민이 많다. 이번에는 불성실등록에 대한 처벌규정이 있어 제대로 공개를 안할 수도 없고 공개를 하면 지난번의 불성실신고를 스스로 드러내놓는 셈이 되니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이처럼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는 모의원의 말에서는 본인 스스로도 이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금융자산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가명이나 다른 사람 이름으로 빼돌리려는 사람들도 언제 갑자기 금융실명제가 실시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불안을 더해주고 있다.
○결국 “스스로 묘혈판 것”
○…민주당의원들도 재공개가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1차공개때 비록 민자당의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실신고」라는 평을 듣기는 했으나 또다시 「현미경」으로 검증받아야 된다는 현실이 기분좋을리 없다.
민주당은 특히 신진욱·국종남·김옥천·김충현·강희찬의원 등 자산가의원들의 재산문제가 또 한차례 파장을 몰고올지도 모른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문제의원」으로 거론됐던 한 의원은 『한밤중에 또다시 언론 등의 확인전화를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고백」하고 있다.
「문제의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지난 재산공개와 달리 이번엔 사정기관에 의뢰하는 실사와 함께 「법적조치」의 가능성이 높아진 부분. 한 「문제의원」은 『우리당이 재산누락과 부정축재시 체형과 벌금은 물론 재산환수까지 정해놓은 것은 결국 스스로 묘혈을 판 것』이라고 걱정하기 조차했다. 그는 『법을 적용하는 것은 결국 힘을 지닌 정부·여당이고 당하는 것은 야당일뿐』이라고 「피해의식」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당 지도부의 「비호」 마저 기대할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도 돌고 있다. 한 의원은 『재공개에서 악성 사례도 드러나겠지만 명백한 범죄혐의가 아니면 의원직까지 물러나는건 옳지않다』고 곧 있을 정치특위협상에서 「보호막」이 설정되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
더욱이 당지도부가 「법과 제도」에 의한 공개를 주장하다가 「YS의 힘」에 밀려 재산을 공개해 놓고 또다시 공개하게끔하는 「전술적 미스」에 대한 불만도 팽배해 있다.<이상언·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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