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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 도우려면 이명박 캠프 가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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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차기는 경제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의 제주 발언이 정치권과 재계를 들쑤셔 놓고 있다. 전경련은 26일 해명서를 내고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한번 뱉은 말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의 발언은 이미 정치권의 '핫 이슈'가 돼 버렸고, 조 회장을 겨냥한 정치권의 비난과 공세 수위도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이명박 후보의 경선 상대인 박근혜 후보 측이 즉각 전경련 회장직 사퇴를 요구한 데 이어 열린우리당까지 가세했다.

조 회장은 25일 제주에서 열린 전경련 여름 포럼 특강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외국인에게 물어보니 '무균(無菌)으로 살아온 사람이 있겠느냐'고 했다" "다 들추면 제대로 된 사람 없다"는 등의 발언은 이 후보를 편든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었다. 조 회장과 이 후보는 사돈 관계다. 예상치 못한 '설화(舌禍)'에 휘말린 전경련과 재계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파문 진화 나섰지만…=전경련은 해명서에서 "조 회장 특강 내용 중 일부 표현이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강연은 차기 지도자에게 경제를 잘 챙기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달라는 경제인들의 일반적 바람을 피력한 것이며, 특정 정치인과 관련 지어 발언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조 회장 강연 내용의 주요 뼈대는 전경련 산하 연구소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잡았지만, 문제가 된 발언은 조 회장이 직접 원고에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조 회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직접 나서 파문을 수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정치권은 연일 포문=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조 회장은 불필요한 정치적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돈을 도우려면 전경련 회장을 사퇴하고 이명박 후보 캠프에 들어가서 지원하는 게 마땅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측도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유승민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은 "부패한 지도자, 부동산 투기를 한 지도자, 법을 어긴 지도자를 뽑아야 우리 경제가 살 것처럼 주장한 조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을 당장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 측 장광근 대변인은 "차기 대통령을 선택할 때 경제를 살릴 수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주장이 아니냐"고 말했다.

◆ 재계도 비판 목소리='전경련 회장이 지위를 망각하고 무책임한 사견(私見)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조 회장의 돌출 발언은 대선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전경련의 다짐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라며 "게다가 현 정부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게 하는 바람에 올 연말까지 전경련 회장단 회의가 구색을 갖춰 열리긴 다 틀렸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특강 이전에 '강연 주제가 오해를 부를 수도 있으니 바꾸자'는 얘기가 임원들 사이에서 나왔지만 아무도 조 회장에게 건의하지 못했다"며 경직된 의사 소통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표재용.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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