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 각론단계 진입/한­중 외무 방콕회담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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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 “공동해결” 중은 “평화”에 비중/전기침 방한은 북 간접압력 효과
2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중외무장관 회담은 북한의 NPT 탈퇴철회에 대한 국제적 노력이 주변국들의 보다 구체적인 협의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국제적으로 북한을 계속 몰아세우기만 했는데 이제 구체적 방안과 조건을 놓고 의견 절충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회담은 그러한 의미에서 중국으로부터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계속 하겠다』는 약속을 끌어낸 것만으로도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승주외무장관은 이날 회담이 「진지하고 솔직한 분위기」에서 진행됐고,「건설적이고 유용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표현은 회담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지 않았으며,이견이 노출됐고,각자의 입장은 표명했으나 뚜렷한 합의는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외교적 수사다. 이러한 수사를 그대로 해석하면 이날 회담에서 양국은 완전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양측이 합의한 것으로 되어있는 「평화적인 공동해결노력」에 있어 중국측은 「평화적인 해결」에 더 비중을 둔 것 같고,한국측은 「공동해결」을 강조하는 눈치다.
그러나 이러한 이견은 중국의 역할과 입장을 고려한다면 불가피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대화를 통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는 중국이 현단계에서 한국측에 자신들의 행보와 관련해 구체적 약속을 하기는 어려운 처지다. 그러한 약속은 북한의 불신을 받아 이 사안에 대한 영향력을 축소시키게 된다.
북한 핵문제 해결노력은 지금까지의 국제기구를 통한 「여론조성기」를 지나 각종 채널을 통한 「개별협상기」에 들어섰다.
한국은 오는 6월12일 북한이 3개월의 통고기간이 지나도록 핵사찰을 거부,NPT를 정식 탈퇴하게 되면 국제제재가 협상보다 강조되는 「국제제재기」가 시작돼야 한다고 보고있다.
한국의 관심은 중국이 이러한 단계적인 대북압력일정에 따라와 줄 수 있을 것이며,그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한미 양국이 합의한 시간표에 따라 마지막 제재단계에 들어갈 때 중국이 유엔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북한이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긴요한 것이다. 우리측은 이번 회담에서 그와 같은 메시지를 북한에 분명히 전달해주기를 희망했다. 중국은 오는 6월초가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그때의 입장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중국은 현단계에서 북한을 고립시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인 것같다. 그러나 전기침외교부장이 6월 시한 직전인 5월 하순 한국을 방문키로 한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그의 방한은 북한 핵문제에 대처하는 한국의 입장에 대한 중국의 묵시적 양해로 이해될 수 있으며,따라서 북한에 대한 간접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 한국과 중국은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데 합의했으나 그 방식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의견 교환이 있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현재로서 열려있는 방법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과의 협의가 있을 뿐이다. 앞으로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적 접근 ▲남북한 당사자간 직접 대화 ▲미국과 북한의 직접협상 ▲중국을 매개로 한 협상 ▲관련국들이 함께 참여하는 소규모의 다자회담방식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날 회담에서 중국은 그 어느 방식을 지적하지는 않고 「관련국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를 희망했다. 이는 북한이 요구해온 북한­미국 직접접촉을 염두에 두면서도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이 이번 회담을 먼저 제의한 데는 그러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을 것같다.<방콕=김진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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