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보스나평화안」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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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년전 사라예보에서 발사된 첫 총탄은 세르비아 호전주의자들이 민족분열에 반대하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 그리고 보스나인들의 대규모시위대를 향해 쏜 것이다. 당시 시위대는 세 민족이 이제까지 평화롭게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것을 주장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증오가 거의 모든 곳에 서려 있다. 세르비아인들은 금세기초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제창했던 대세르비아 건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유엔·유럽공동체 (EC),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이 지역에 무기금수조치를 내림으로써 세르비아측에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보스나인들이 싸우는데 필요한 무기와 보급품들을 구하지 못하게 막아놨다.
유엔은 크로아티아에서 소수민족의 권리가 위협받았을때 개입을 거부했고 세르비아의 군사적 침략과 잔인한 민족청소를 제재하거나 처벌하지 않았다. 이제 유엔은 2년전 투입했더라면 오늘날 유고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대규모 군대파견을 고려하고 있다.
유엔은 보스나지역을 10개자치주로 구분하는 내용의 밴스-오웬안이 이번 전쟁을 몰고 온 유고연방체제보다 불안정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스나의 세르비아인들은 이 안을 반대하고 있다. 보스나인들도 은근히 반대하지만 크로아티안들과 함께 전술적이유 때문에 형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스나의 분할을 집행하도록 돼있는 유엔군은△크로아티아 점령구역내 군세력들의 무장해제△중립적인 행정부와 경찰력의 수립△유엔점령구역내 크로아티아 난민들의 재정착등의 임무를 맡았으나 이를 수행하지 못해 무능력함을 드러냈다.
평화유지군이 증강된다해도 이들이 분할된 보스나에서 세르비아계 세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유엔군이 보스나인에 의한 테러나 세르비아 점렴지역에 대한 게릴라전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비현실적인 기대다.
밴스-오웬안은 평화안이라기보다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의 점령행위를 국제사회가 공식 인정하는 정전협정에 불과하다. 이것은 세르비아의 침공을 막기위해 1,2년전에 취했어야 할 군사개입에 비하면 소극적이고 결과가 불분명한 임무다. 당시 유고군에 대한 군사적 제재나 보스나인에 대한 무기공급과 적극적인 지원을 시행했다면 정치적 명분이나 군사적 목적이 분명한 작전이 됐을 것이다.
밴스-오웬안을 집행하려는 유엔의 노력은 서방측이 기대하는 깃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고 보다 많은 사상자를 낼 것이며 보스나는 결국 북아일랜드나 레바논의 확대판이 돼버릴 것이다.
애당초 보스나의 분할을 막기 위한 유고 사태 개입이 새로운 북아일랜드를 만들어낼 것이라며 파병을 거부한 영국·프랑스, 그리고 미국정부가 이제 보스나의 분할을 집행하기 위해 보다 대규모의 개입을 추진한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밴스-오웬안이 실패하면 유엔군은 혼란에 빠져 철수하고 말 것이다. 이어 보스나에서는 유엔과 EC를 완전치 불신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서방의 정치적·군사적 비겁함과 쓸데없는 선의를 끈질기게 추구한 결과다.
이는 30년대보다 더한 정치외교적 무능함의 연대기다. <정리=이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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