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박물관展 100배 즐기기] ③ 그는 정말 가난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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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11세에 대주교에게서 연주료로 받은 금화(左)와 20여 년 뒤 연주 여행 중 드레스덴 궁정 음악회에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받은 담뱃갑(右). 담뱃갑에는 약간의 돈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모차르트박물관展'에서 전시 중이다.

"제가 지금 600플로린(오스트리아 제국의 화폐 단위)만 가지고 있더라도 한결 침착하게 편지를 쓸 수 있었을 텐데요."

사망하기 1년 전인 1790년 모차르트는 금전적 후원자였던 푸흐베르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아내는 아프고 저도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라고 애원한 편지에 대한 답장에는 150플로린이 동봉됐다.

금전적으로 어려웠던 모차르트의 말년은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연구에 의하면 모차르트는 당시 외과의사 연봉의 서너 배에 가까운 많은 돈을 벌었다. 연주.작곡.레슨의 세 수입원에서 들어오는 연봉 규모가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1억원에 가까웠다는 주장도 있다.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 재단 이사장인 제네비에브 제프리 또한 "모차르트가 비싸고 질 좋은 종이와 잉크를 사용했기 때문에 자필 악보의 보존이 쉬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여섯 살에 연주 여행을 시작한 이후 넉넉한 생활을 했다는 증거다.

문제는 도박과 씀씀이였다. 그는 사후에 7만5000마르크에 달하는 빚을 남겼다. 18~19세기 베토벤의 후원자로 잘 알려진 카를리힌프스키 공은 빚을 돌려받기 위해 모차르트의 월급 절반을 압류한다.

모차르트는 당시 유행하던 카드 게임과 내기 당구 등에 빠져 빚을 지고, 또 빚을 내 빚을 갚았다. 그가 "카지노…. 그런 곳에는 가지마. 무슨 말인지는 잘 알 거야"라고 부인 콘스탄체에게 쓴 편지도 남아 있다.

많이 벌고 많이 썼던 모차르트가 11세에 연주료로 받았던 금화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차르트박물관展'에서 볼 수 있다. 드레스덴 궁정 음악회를 마치고 받은 담뱃갑도 전시되고 있다. 힘겨운 말년을 떠올릴 수 없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물건들이다.

※모차르트박물관展,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9월 15일까지, 초등학생(7~12세) 2000원 할인, 02-2235-0006, www.mozart.co.kr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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