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1. PET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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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필자가 개발한 PET로 개의 내부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

나는 정말 행운아다. 과학자로서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운을 경험했다. 내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독자 개발한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가 ‘무덤’ 속에서 25년 만에 다시 살아나와 전 세계 수많은 암 환자를 진단하는 의료기기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과학자들은 평생 수많은 발명과 발견을 한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뒤가 아니라 나처럼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이론이나 발명이 인류 복지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의료기기 업체뿐 아니라 나마저도 잊다시피 했던 PET가 어느 날부터 의료 현장에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기초과학센터에서 새로운 발견을 수없이 해내는 데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01년에 있었던 일이다. 한 의료기기 통계를 보던 나는 눈을 의심했다. PET가 2000년 한 해에만 약 1000대가 팔렸다는 것이다. 한 대에 몇 십억 원 하는 이 기기가 날개 돋친 듯 팔리는 히트 상품이 된 것이다.

1970년대에 일어난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 붐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당시 CT는 의료 혁명을 불러왔다는 평을 받으며 불티나게 팔렸다. 72년 영국의 갓 프리 하운스필드가 CT를 개발했다. 그는 CT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미국 터프스대 알랜 M.코멕과 함께 7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CT를 개발한 지 7년 만에 노벨상을 탄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인류에 기여한 바가 컸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PET를 설치하는 병원이 급속하게 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다. 한 대가 보급되면 암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환자가 그에 비례해 늘어난다. PET는 암의 전이와 치료 효과 파악, 초기 중에서도 초기의 암을 찾아내는 의료장비로는 이만한 게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고 있다. CT나 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MRI)로 찍었을 때 나타나는 암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원형 PET는 나의 발명품을 모태 삼아 만든 것이다. PET 개발의 시초는 75년이었다. 내가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의 부교수로 있을 때다. 그러나 2000년까지는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다. 세계 굴지의 의료기기 업체인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이 70~80년대에 상품화했으나 선명도가 떨어져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 뒤에도 몇 개 기업이 잇달아 실패했다. 나 역시 PET를 만든 지 4~5년 뒤 MRI 개발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요즘 PET가 뜨면서 여기저기서 X선-CT, MRI에 이어 인체 영상 분야에 노벨상이 주어진다면 내가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치켜세운다. 노벨상이란 게 받고 싶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천운이 닿으면 모를까.
 
어떻든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유명해졌다’는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말이 떠오를 정도로 PET의 부활은 나의 40여 년 연구 외길을 보상해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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