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배심제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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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세기 유럽 최고지성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프랑스 정치사상가 토크빌의 미국예찬은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특히 미국의 사법제도와 그 관행을 높이 평가하면서,이 사법제도야말로 자유의 신장과 공공질서의 유지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미국의 사법제도가 지난해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을 촉발시킨 폭력경찰에 대한 무죄평결로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당시 많은 미국인들은 로드니 킹 사건과 같은 재판에서 배심원들이 정말 아무런 정치적·사회적 편견없이 공정한 평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바로 그런 의구심은 이번 미 연방법원의 최종 배심평결을 앞두고 더욱 고조되고 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이번 재판일정은 유무죄평결과 형의 선고만을 남겨놓고 있는데,이미 1,2차 심리를 가졌으나 결론을 못낸채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이번 재판은 재판의 주체가 캘리포니아주가 아닌 연방법원이라 그 무게와 파장이 더욱 엄청날 것이 예상된다.
미국의 사법제도는 재판에 배심제라는 독특한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배심원)들이 기소과정이나 재판에 참여,기소 및 유무죄 여부를 평결하는 제도다. 그것은 판·검사의 단독적인 판단보다 상식있는 보통사람들의 일치된 견해가 더 합리적이라고 보는데서 생겨난 것이다. 더구나 형사재판의 경우 피고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배심원의 평결은 만장일치가 되어야만 효력을 발생한다. 바로 여기에 배심제도의 허점이 도사리고 있다. 배심원 가운데 한명만 매수돼도 승소할 수 있고,또 반대로 로드니 킹사건과 같이 인종문제가 개입된 예민한 사안에서는 의도적으로 흑인배심원을 배제하는 관행이 굳어져 있다.
그래서 미국의 법조계 일부에서는 배심제도의 개혁을 부르짖는 소리가 높다. 그 내용은 합리적인 배심원 선정기준 확립과 함께 주민들의 인종구성 분포를 염두에 둔 재판장소 선택,배심원의 인종구성비율 등을 주안점으로 하고 있다. 이번 로드니 킹 사건 재판은 미국의 사법제도를 수술대위에 올려놓은 좋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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