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원혜영·박계동의원/설레는 복학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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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1년 교련반대때 제적… 이번이 4번째 원/유신반대로 75년 한학기 남기고 떠나 박
문민정부의 제적생복학허용에 따라 40대의 「금배지대학생」들이 캠퍼스에 모습을 나타내게 됐다.
모두 네차례의 제적끝에 네번째 복학을 하게 된 민주당의 원혜영의원(42·부천 중을)과 두번째 복학을 하게 된 박계동의원(41·강서갑)이 주인공.
원의원은 서울대교양학부학생회장(사대역사학과1년)때인 71년 교련반대시위로 첫번째 제적을 당했다. 75년에는 유신반대시위에 따른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 때문에,80년 5.17이후에는 별다른 「활약」도 없이 「과거」 경력때문에 수배·제적돼 복학과 제적의 악순환을 거듭해왔다.
대학졸업장도 없는데다 「과거」 때문에 직장을 얻기 힘들어진 원의원은 82년 청정식품업체인 (주)풀무원을 창립,사업가로 변신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85년초 3학년 1학기로 복학했으나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낸 『역사비평』출간때문에 자의로 휴학했다. 87년엔 아예 회사에서 손을 떼고 복학을 시도했으나 「미등록학사제적」된 상태여서 복학할 수가 없었다.
원의원은 최근 재산공개에서 86년 12월 회사퇴임과 함께 「탄압」을 우려,부친앞으로 명의이전 해놓았던 6억원상당의 「상표권」을 자신의 재산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원 의원은 당초 이번 복학을 망설였다. 의정생활과 수학의 병행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복학을 최종결심한 그는 『이수학기가 늘어나더라도 컴퓨터 등 첨단과학과 국제경제 변화 등 다양한 전공외 과목까지 수강해 보겠다』고 했다.
박 의원은 재야시절 추적하는 경찰을 번번이 골탕먹였던 유명한 「도망자」출신. 75년 고대정외과 4학년 1학기때 유신반대시위를 벌이다 제적된 뒤 80년 5.17이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복학·졸업의 꿈이 좌절됐다. 당시 수배중 전남 고흥에서 일본밀항을 시도했다가 경찰이 덮쳤을때 라면 10만원어치를 사서 「라면장사」로 가장해 탈출한 것은 유명한 일화. 결국 나중에 불잡혀 1학기 남은 수업대신 1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말았다.
졸업학점은 이수해놓아 1학기만 다니면 될 박 의원은 『72학번으로 10년마다 대학문을 두드리게 된 셈』이라며 『강만길·최장집교수의 역사·정치강의도 듣고 정치가 직업인만큼 현실정치 경험과 후배(정외과)들의 이론정치 사이의 교감을 이루는 고리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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