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 빅리그 습격한 '야구 사무라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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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16면

AP=연합뉴스

“항상 어떻게 하면 팬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대신 알아차린 것? 정말 내게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면 좋고. 그러면서 더욱 자신감이 생기고 남을 의식하는 이치로는 필요 없다. 진정한 나의 분신으로 이치로가 됐다. 사람들은 주목받으면서 마네킹이 된다. 자기 자신이 아닌 ‘짝퉁의 나’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먼저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올스타 MVP 이어 동양인 최고 연봉 계약

이미 시애틀의 얼굴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치로(34)에게서 새삼 성공비결을 찾아보기도 뭣하다. 그러던 차에 이치로가 웬일인지 속내를 털어놓는다. 지난 5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 중 한 대목. 이치로는 미디어의 접근을 꺼리는 스타 중 한 명이다.

따라서 종종 짧은 대답이 나오면 미디어는 거기서 더 깊은 뜻을 달거나 오해를 한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매우 길게 ‘자신과 야구’에 대해 밝힌 이 인터뷰는 일본의 3할 타자가 여전히 빅리그에서도 3할 타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그의 성공 키워드 몇 가지.

2001 올스타전에 출전한 이치로가 사인공세를 받고 있다(위). 2004년 260호 안타를 쳐낸 스즈키 이치로(가운데). 이치로가 14일(한국시간) 시애틀 구단과 연장 계약을 한 뒤 기자회견하고 있다(아래).

진정한 나의 분신

미국에서 미국식으로 따라하면 쫓아갈 수 없음을 이미 지난 2000년 시애틀 준비 캠프(그의 미국 진출 준비단계) 때 알았다. 낮 경기가 있을 때 팀 동료들이 타격훈련을 하지 않으면 이치로는 혼자 달리기를 하며 부족한 운동량을 보충한다. 저녁 경기가(대개 오후 7시5분) 있는 날에는 오후 2시쯤 구장에 도착, 스트레칭을 하고 한 시간 마사지를 받는다. 이치로가 특별히 주문한 습도조절 케이스(배트의 습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박스에서 배트를 꺼내 타격훈련을 시작한다.

동료나 배트 보이들이 그의 방망이를 만지게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일본에서 그래왔듯, 즉 나고야 전기공고 시절 선배들의 유니폼을 모두 빨아 건조대에 걸어놓은 뒤 새벽 3시, 그때에야 스윙 훈련을 시작했던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시간이 조금 줄었고, 시간대가 달라졌다. 손수 애지중지하며 꿰매던 외야수 글러브는 이제 일본에 특별 주문하거나 장인(匠人)에게 맡겨 관리할 뿐이다. 공과 배트와 글러브는 이치로의 분신이다. 다른 선수들이 라커 룸에서 식사할 때 이치로는 아내가 싸준 ‘전투 식량’, 도시락을 먹으면서 준비한다.
 
짝퉁이 아닌 타법

황새는 황새, 뱁새는 뱁새. 자기 몸에 맞는 야구를 했다. 일본에서 뛸 때보다 스탠스 폭을 더 줄이고 배트도 가볍게 했다. 분수를 안다. 파워로는 이길 수 없으니 틈을 찾았다. 최고의 배트 컨트롤로 공을 맞히고 도저히 안타가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도 빠른 발로 내야안타를 만들어낸다.

마치 골프선수처럼 유격수와 2루수 사이, 유격수와 3루수 사이의 ‘구멍’을 찾아 집어넣는다. 홈런타자가 아닌, 호쾌하지 않은 그의 타격에 그 누구가 기립박수를 치겠는가. 팬을 의식하지 않고 정말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찾아냈다.
 
솔직해질 것

USA투데이 인터뷰는 이렇게 끝난다. “종종 미국 사람들은 실제보다 자기 자신을 더 크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미국과 일본 문화의 큰 차이다.”

자신을 크게 드러내는 것에 대해 어쩌면 이치로는 체질적인 이질감을 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종 그가 시애틀에서 따로 노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시각은 오해라는 게 팀 동료 라울 이바네스의 주장이다. “이치로는 그저 훈련하고 다시 훈련하고 준비하는 선수다. 그게 이치로에 대한 오해라든가, 비밀이라면 비밀일 것이다.”

가장 일본적인 모습, 아니, 가장 이치로다운 모습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성공을 거둔 타자. 그가 바로 2007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 이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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