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상 시상식 장|스타들 정치발언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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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톱스타들이 자신의 대중적 영향력을 배경삼아 공개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인가.
지난달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거행된 제6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의 정치적 발언이 터져 나오면서 이런 논란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파문」을 부른 것은『사관과 신사』『귀여운 여인』의 톱스타 리처드 기어.
이날 전세계 10억 시청자가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미술 감독상을 시상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그는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등소평)을 직접 거명, 끔찍한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티베트 주둔 중국군을 철수해 티베트인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박수를 받았다.
기어가 중국의 인권상황을 공개 비판한 것은 수년전부터 불교를 믿어온 그가 불교가 국교격인 티베트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 전에는『플레이어』의 팀 로빈스와『델마와 루이스』의 수전 새런든 스타부부가 나와 미정부가 에이즈 감염자라는 이유로 아이티인 2백66명을 미군기지에 감금한 것을 비난해 시상식장을 술렁이게 했다.
또 최우수 감독상 시상을 맡은 배우겸 가수·감독인 바브라스트라이샌드는『여성이 모든 부문에서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갖는 시기가 오기를 기대한다』며 여성차별적 현실을 비판했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이 이처럼 정치적 발언대가 된 것은 지난 70년대 이래 처음이다.
지난 73년 말론 브랜도는 아카데미상 사상 두번째로 수상을 거부해 화제를 불렀었다.『대부』로 남우주연상을 받게 된 그는 인디언 차별대우에 항의, 인디언 소녀를 대리출석시켜 수상 거부성명을 낭독케 했다.
75년초 거행된 제4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버트 슈나이더와 피터 데이비스는 그들이 만든 반전영화『하츠 앤드 마인즈』로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했다.
그런데 슈나이더는 수상연설을 하면서 베트콩 지도자가 보내온 전문을 낭독, 이를 지켜보던 많은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번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정치적 발언이 터져나온 것은 그동안 정치족쪽 등을 돌렸던 스타들이 젊고 진보적인 빌 클린턴 대통령 등장 이후 인권등 정치적 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한 징조로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곽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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