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말로 표현 못하는 것, 애들은 손으로 그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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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에드위즈 앙티에
‘소아과 의사는 직업이 아니라 삶’이란 철학으로 1968년부터 파리 종합병원 등에서 소아정신과 의사로 일했고, 현재는 파리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동의 집중력을 키우는 법』 『내 아이를 이해해요』 등 20여 권의 책을 썼다. 

심리학이 넘쳐 흐르는 세상이다. 하기사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으니, 몸에 대한 연구가 있듯이 마음에 대한 연구가 없을 수는 없다. 언론에서도 사고만 터지면 당사자의 심리를 분석한 기사를 실을 정도로 심리학이 끼어들지 않는 분야가 없을 지경이다.

 이제 심리학이 영역을 넓혀 미술, 정확히 말하면 그림에서도 심리를 읽어내고, 그 결과에 따른 치료법까지 제시한다. 미술 치료사라는 직업인을 양성하는 민간 단체까지 생겼다. 특히 어린아이의 그림은 심리 분석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지적 발달능력을 측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처럼 자식의 지적 능력이나 감성 발달에 관심을 쏟는 부모라면 귀가 솔깃해질 책이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소아정신과 의사인 에드위즈 앙티에(Edwige Antier)가 4월 발표한 『우리 아이, 그림으로 말해요』(Les dessins d’enfants vous parlent)이다.

 어른이 보기에는 낙서에 지나지 않는 그림이지만 그 안에서 아이의 감정과 지적 발달능력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우리 아이가 원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면? 꾸불꾸불한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원이 막히지도 않았다. 만 2세면 걱정할 것이 없다. 만 2세인데도 그런대로 완전한 원을 그려냈다면? 그런 아이의 부모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도 된다. 혹시 영재가 아닐까 착각해도 괜찮다. 완전히 막힌 원을 제대로 그리는 나이는 평균적으로 만 3세이니까.

아이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손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그림에서 심리 분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연령별로 아이들의 그림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의미를 차분하게 접근한다. 그러나 그림의 해석을 결코 단순화하거나 일반화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린 아이의 가정 상황은 물론이고, 아이가 그림으로 보여주려는 대상, 그림을 이루는 여러 조각의 관계까지 고려해서 신중하게 해석한다. 그림을 통해서 지적 발달능력은 일반화해 판단할 수 있지만, 심리 분석까지 그림만으로는 섣불리 판단하지 말하는 경고가 담겨 있다. 또한 심리 분석을 위해서는 아이와의 깊은 대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소아정신과 의사의 간곡한 부탁이 읽힌다.

가령 화면 전체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선을 굵게 힘껏 눌러 그린 그림은 자신감에 넘치는 아이의 그림이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섣부른 판단이란다. 그림 속의 인물이 두 팔을 활짝 펴고 두 발을 땅에 굳건히 딛고 있을 때 그런 해석이 확실성을 더 갖는다. 그래야 “이게 바로 나예요!”라고 힘차게 말하는 행복한 아이의 그림이다.

반면에 4세 이후에도 사람을 그리지 않고 선으로 모양을 만들어가는 아이는 흔히 정체성의 혼돈을 겪는 아이라고 진단된다. 역시 섣부른 해석일 수 있단다. 이 경우 사람을 그리려 하지 않는 아이의 상황에 더 역점을 둬야 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새 엄마가 생겼다든지 부모 간에 종교적 갈등이 있다든지 할 때 정체성을 감추고 싶은, 정신적 감옥에 갇힌 아이의 그림이란 해석이 분명해진다.

 심리학의 대중화로 너도나도 심리학자를 자처한다. 하지만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학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치료를 위한 심리학이 상처를 주는 심리학이 된다. 인간, 특히 어린이가 ‘위대한 탐색자’라면 그림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판단하려는 선무당적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해답집이 아니라 안내서일 뿐이다.

강주헌<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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