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내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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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정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줄곧 중요한 문제로 논의되어 왔다.이에 대한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전혀 상반되지만 매우 의미심장하다.플라톤의 「이상국가」 구상은 국가에 의한 가정의 흡수를 전제로한 것이었다.개인의 재산은 물론 아내와 자식까지도 국가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모든 시민을 하나의 대가족 성원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은 일상생활의 필요를 스스로 충족시키고 자녀를 낳고 기름으로써 보다 큰 정치적 사회,즉 국가내에서 그 맡은 바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방법론상으로는 큰 차이가 있지만 국가속에서 가정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국가와 가정의 관계에 대한 이같은 문제제기는 대개 가정의 올바른 가치관이 붕괴되는데서 비롯한다.올바른 국가란 올바른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관점이다.가정생활이 정상적으로 영위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가운데 하나가 주부에게 있음은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다.한 가정에 대한 책임은 물론 가족구성원 모두에게 있지만 가정내에서의 각자의 역할이 다소 다르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주부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점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동양적,혹은 유교적인 관습으로는 성공적인 주부상을 내조에 두고 있다.남편과 자식을 잘 보살피는 것 하나만으로 일단 주부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다.그러나 물질만능의 풍조가 만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주부의 내조도 많은 변모를 겪었다.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움켜쥐는데 거들수 있어야만 진정한 내조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생겨났다.지난번 대학입시부정사건에서,요즘 한창 온나라를 들썩거리게 하고 있는 공직자·정치인들의 축재에서도 주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또는 「남편을 돕고 싶어서」 따위가 한몫 거든 주부들의 변명이지만 아무래도 맹목적인 자식사랑이요,빗나간 내조라고 할 수 밖에 없다.주부들이 권력으로 돈을,돈으로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같은 내조는 집안을 망치기 십상이고 국가의 기본조차도 흔들리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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