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돈이 남아돈다/경기불투명 기업들 신규투자 꺼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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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단자 싼돈빌려 은행빚갚기 바빠/채권에만 자금몰려 수익률 속락
금융기관들이 돈이 남아 고민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 상태에서 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관망하고 있는데다,유별나게 정부가 금리인하를 거듭 공신하고 있는 상황이라 굳이 금리인하 전에 돈을 쓰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정바람까지 불자 은행들이 거액의 신규대출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 때문에 자금이 넘치는 금융기관들은 서로 여유자금을 떠넘기는데다 채권 등 유가증권 투자를 확대해 실세금리 하락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22일 금융계에 따르면 이달들어서도 은행의 대출규모는 거의 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단자사 등 제2금융권에서 싼 자금을 가져다 은행빚을 갚고 있어 2월중 전체 당좌대출 잔액이 2천8백억원이나 줄어들었다. 3월에도 이같은 현상은 이어져 평상시 65∼70%수준이던 당좌대출 한도 소진율이 50%를 맴돌고 있다.
대출수요가 줄어 돈장사를 못하는 바람에 수지악화까지 우려되고 있는 은행들은 여유자금으로 유가증권투자를 늘리고 있다. 은행권의 유가증권 투자규모는 지난달 4천2백억원이 늘어난데 이어 이달들어서도 5천억원가량 늘어났다.
이 때문에 실세금리의 대표인 회사채(3년만기 은행보증)의 유통수익률은 22일 마침내 연 10%대로 진입했으며,통화안정증권 발행금리도 22일 또다시 인하돼 연 11%가 됨으로써 1·26규제금리 인하이후 22일까지 7차례에 걸쳐 1.75%포인트나 낮아졌다.
채권 유통수익률이 급락,발행수익률에 근접하자 은행들이 한은으로부터 통화채를 「자발적」으로 사들이는 진풍경도 벌어져 올들어 통화채 잔액이 1조3백억원이나 늘어났다. 또 지난 18일 한은의 환매조건부국공채(RP) 경쟁입찰때는 34개 은행중 28개 은행에서 예정금액(6천억원)의 3배가 넘는 1조8천2백90억원어치를 사겠다고 앞다퉈 응찰,평균 입찰금리가 10.72%로 강제배정금리(11%)보다 크게 낮아지는 「제살깎기」 현상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투신사들은 은행의 여유자금이 공사채형 수익증권으로 몰려들자 지난 11일부터 기관자금에 대해서는 13.5∼12.5%선이던 수탁이율을 12% 수준으로 내려버렸다. 채권 유통수익률이 계속 떨어져 3년만기 정기예금금리(연 12%)보다도 낮아지자 투신사들의 거액자금이 은행의 정기예금으로 떠넘겨졌으며 은행들은 이에 맞서 이미 자유화되어있던 3년만기 정기예금금리를 12%에서 11%로 부랴부랴 낮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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