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인사에 바란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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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정부의 인사선풍이 국책은행과 일부 시중은행 및 증권·보험 관련기관에 이르기까지 예외없이 들이닥칠 조짐이다. 공석이 된 일부 행장자리에는 정부나 다른 기관의 어느 인물이 들어앉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해지면서 관련은행의 노조 등을 중심으로 배척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몇년에 걸쳐 인사철마다 나타났던 이같은 의례적인 움직임이 이번에는 새정부의 조각과 한국은행 총재의 경질에 이어 단행될 금융 관련기관장의 대대적인 인사와 맞물려 더욱 조직적으로 전개되는 분위기다.
우리는 이러한 사태가 정부의 인사정책이나 관련기관의 수용태세에 적극적인 변화 없이는 앞으로 풀어야 할 금융자율화 및 개방정책에 중대한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경계한다.
각 기관의 장에 누구를 앉혀야 할 것인가는 법적으로는 정부의 판단에 따른 문제다. 그러나 정부가 임명할 수 있는 각급 금융기관의 책임자는 반드시 적재적소여야 한다. 금융기관의 공익성·공공성을 생각할때 더욱 그렇다.
적재적소가 안되면 불필요한 잡음이 일어나고 정책의 협조와 시행이 삐걱거릴 수 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지금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몇몇 인사들 가운데는 국책은행의 총재나 은행장에 적합치 않은 사람들이 끼어있는 것 같다. 그들의 경영능력과 해바라기성은 이미 과거의 행적을 통해 판정이 난 사람들이다. 정부가 이번 금융기관 인사에서 일부 은행들의 반발과 이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합당한 인물 선정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인사에 그러한 원칙이 보인다면 일부 금융기관에서 일고있는 재무부 및 다른 기관 출신의 은행장 취임 배척운동은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이들 은행들이 내부에서 승진한 사람만이 행장으로 취임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일이다. 물론 일부 시중은행처럼 해당은행에 적임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은행경영을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도 괜찮다는 개연성이 보이지 않는 은행에서까지 무작정 자기 은행 출신의 은행장을 고집하는 것은 금융경영의 효율성을 무시하는 집단이기주의의 표현이다. 좋은 인물이 있으면 행장으로 영입해서 경쟁력 있는 은행으로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이 기회에 정부 산하 금융기관장이 재무부 출신자로 독점되는 사태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금융기관의 경영혁신과 각종 불공정 관행을 근절시키고 금융의 주체들이 개방의 물결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적격의 인사에 의한 분위기 쇄신이 특히 필요하다. 금리자유화나 금융산업 개편 등이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는 여건조성을 위해선 관치금융 사고도 안되지만 고질적 배급식 금융사고에 젖은 사람도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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