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公기업 물갈이, 총선용 오해없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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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공기업 간부 임기를 존중하다 보니 (기강이)풀어졌다. 경질 대상폭과 기준을 강화하겠다. 웬만하면 이번에 모두 바꾸겠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의 발언이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임기를 보장해 주니 (정권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더라. 이제는 피를 묻히겠다는 뜻"이란 해석까지 붙였다. 경영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비리에 연루된 공기업 인사는 임기와 무관하게 경질하는 게 옳다. 우리나라 공기업이 방만한 경영과 비리 등으로 지탄받는 점을 감안하면 확 바꿀 필요도 있다.

그러나 鄭수석의 발언은 시기적으로나 정치 여건상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만은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현재 여권(與圈)은 총선을 앞두고 표에 도움이 되는 인사는 모두 동원하겠다는 태세이고, '총선에 나가서 공 세우면 한 자리 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실제로 여권 고위 관계자들은 "총선에서 인적 충원에 문제없다. 미처 몰랐는데 우리가 임명할 수 있는 공기업 사장이나 감사 등이 많더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간부가 공기업 물갈이론을 제기하는 것은, 결국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와 낙선한 사람들에게 공기업 자리를 나눠주기 위한 포석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공기업의 경영이 극히 비효율적으로 운영된 큰 원인은 낙하산 인사에 있다. DJ정권이 인사 문제와 관련해 많은 욕을 먹는 것은 특히 공기업의 많은 자리를 특정지역 인사로 채운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지금까지 공기업 인사에선 비교적 긍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런 盧정부가 이제 와서 과거의 실패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바꿀 때 바꾸더라도 이는 엄격하고 공정한 경영성과를 기초로 해야 하며, 옥석이 구분돼야 한다. 공기업 인사가 선거 공신 보상용이나 뜻 맞는 사람끼리만 자리를 나눠갖는'코드 인사'가 돼선 안 된다. 盧대통령은 '공기업 임기 존중'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고, 그 후에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겨 왔다. 이 약속을 끝까지 지켜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