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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명찰 떼고 다시 ‘민심대장정’ 나선 손학규

중앙일보

입력

중앙SUNDAY


13일 오후 10시30분쯤 포항 남구 대이동의 한 호프집. 2차 민심대장정을 진행 중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일과를 마치고 캠프 수행원들과 술을 한잔하러 들어서자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던 50대 직장인 네 명이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휴대전화로 함께 사진도 찍었다.

30분쯤 지나 술집을 나가려던 사람이 손 전 지사에게 악수를 청했다. 손 전 지사가 반기며 “그런데 ‘한나라당에서 나간 손학규가 이명박 고향인 포항엔 뭣 하러 왔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그 시민은 “당이 뭐가 중요하냐.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철공소를 한다는 그 손님과 손 전 지사는 용접 얘기를 한참 했다. 손 전 지사는 민주화 운동 시절 용접공으로 숨어 일한 적이 있다.

1년 만에 민생현장으로 다시 들어간 손 전 지사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12∼13일 그를 동행 취재했다. 기자는 지난해 7월에도 손 전 지사의 민생 투어를 따라갔었다. 작업복 차림에 면도하지 않은 얼굴은 지난해와 같았다. 부인 이윤영 여사가 12일 속옷과 운동화를 들고 서울에서 내려와 셔츠를 빨아놓고 간 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강연과 정치 행사가 늘면서 막노동 시간은 줄었다. 그는 “대선이 엄연한 현실인데 이번에도 일만 한다면 그건 위선”이라며 “일만 하던 때보다 훨씬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동행한 일정은 대구·포항이었다. 한나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자 ‘빅2’의 본거지다. 그에게 “나와 보니 정말 시베리아냐”고 물었다. 그는 “처음에는 무척 싸늘한 분위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잘 나왔다’고 따뜻하게 격려하는 분위기가 크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10개 테이블이 있으면 본체만체 하는 게 한두 테이블이고 나머지는 적극적으로 반기고, 반 정도는 일어나서 사진 찍자, 사인해 달라 그런다”고 자랑했다.

12일 대구의 한 예식장에서 열린 ‘선진대구연대’ 창립대회 강연엔 700여 명이 왔다. 그를 수행한 김부겸 의원은 “대구에서 비한나라당 집회에 이런 인원이 오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400석 가까운 하객석이 꽉 찼고 로비에서도 200여 명이 대형 TV로 손 전 지사의 강연을 지켜봤다. 조정식 의원은 “예상보다 100∼200명 많이 왔다”며 “하루하루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는 “지금 가슴이 떨리고 아주 흥분해 있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자신감을 얻은 듯 대구 출신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비판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는 “경기지사 때 열차 페리를 검토했다”며 “이는 영구히 남북이 통일이 안 될 것으로 생각하는 낡은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다음 행사를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선 “예. 큰 결심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통화가 이어졌다. 지지 의사를 밝힌 인사의 전화 같았다. 1년 전 취재 때는 들을 수 없었던 얘기다.

13일 포항으로 이동한 그는 포항시청 기자실에서 지역 기자들과 간담회를 했다. 시청의 응대는 썰렁했다. 한나라당 소속의 박승호 시장은 해외 출장 중이었고 부시장도 업무차 부재중이라고 했다. 국장급의 안내로 기자실에 들어선 손 전 지사는 지역 기자가 경부운하에 대해 묻자 “되지도 않을 거고 하지도 않을 거다. 운하론 자체가 정치적”이라고 잘랐다.

차가운 분위기는 포항공대 나노기술집적센터와 포스코 파이넥스 공장을 찾으며 다시 녹았다. 두 곳에서는 “좋은 인력을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 범여권 1위 주자의 위상과 무관치 않은 듯했다. 지난해 기관 방문에선 주로 “참 좋은 일 하신다”는 덕담이 많았다. 손 전 지사도 “공장 같은 데를 가거나 연구원들 표정을 보면 체감하는 게 있는데 적극적인 호의가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지지하는 수행 의원들에게서도 큰 힘을 얻는 듯했다. 지난해엔 민심대장정을 마칠 때까지 단 한 명도 그를 공개 지지한 의원이 없었다. 1년 전 3% 안팎이었던 지지율도 5%를 넘어섰다. 이날 저녁 포항의 한 예식장에서 열린 강연에선 이명박 후보에 대한 비판 강도가 더 세졌다.

“지금 부동산 검증 내용을 보라. 이건 기다, 아니다 밝히면 된다. 도둑놈 잡았다고 경찰서 데려가니 경찰서에서 잡아온 사람에게 ‘이 사람을 어떻게 잡아왔느냐’는 상황이다. 내륙에 운하 파면 포항에 신항만 만들려 하겠느냐. 포항 시민들은 신항만 만들어 달라는데.”

이런 비판이 나올 때마다 150여 명의 청중 가운데 앞줄에 앉은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를 터뜨렸다. 나머지는 조용히 지켜봤다.

식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그래도 여기선 (손 전 지사를 보는 시각이) 안 차갑겠느냐”고 말했다. 한 지역 기자도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있을 때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포항에서 어림도 없다”고 평했다.

그래도 손 전 지사는 고무된 듯했다. 특히 15일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선진평화연대’ 창립대회에 기대가 컸다. 그는 “호남에 가면 작년에 ‘지사님이 좋기는 했는데 한나라당이라…’했던 사람들이 ‘이제 한나라당에서 나왔으니 마음 놓고 도울 수 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그에게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의 경우 복지·대북정책에 분명한 진전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 정부에 대해선 “경제수치가 안 좋았고 정치가 편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22일까지 대장정을 이어갈 계획이다.

대구·포항=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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