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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들의 유형지서 ‘시베리아의 파리’로 -이르쿠 초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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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10면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을 명령한 알렉산드르 3세 동상

Irkutsk 이르쿠츠크

26일 아침 기차는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바이칼에서 흘러나오는 앙가라강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고, 거리에는 제정 러시아 시절에 지어진 목조와 석조 건물들이 고풍스러움을 더하는 아늑한 도시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다. 1652년 시베리아 정벌에 나선 카자크들이 이곳을 겨울 숙영지로 이용하면서 도시가 만들어졌다. 개발 초기엔 중죄인들의 유형지로 이용될 만큼 오지였지만, 19세기 시베리아산 모피와 금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크게 발전했다. 바이칼을 옆에 끼고 있어 시베리아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기온도 온화한 편이다.

앙가라강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가가린 거리에 있는 알렉산드르 3세(1845~1894) 동상을 먼저 찾았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을 명령한 바로 그 황제다. 제정 러시아를 상징하는 쌍두(雙頭) 독수리가 조각된 기단 위에 제복을 입은 황제가 서 있다.
도심 재래식 시장에선 우리 음식을 팔고 있는 40~50대의 고려인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시장의 한 코너를 잡고 김치와 고사리 무침, 가지 무침 등을 팔고 있었다. 러시아의 큰 도시들에 있는 재래식 시장을 찾아가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들이 파는 한국 음식엔 아예 ‘조선 김치(카레이스카야 카푸스타)’ ‘조선 당근(카레이스카야 마르코프카)’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있어 꽤 비싼 값에 팔린다.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이곳으로 오게 된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한 아주머니는 이르쿠츠크 대학에서 아들을 공부시키려고 사할린에서 왔다고 하고, 또 다른 아주머니는 돈을 벌러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고 한다. 억척같은 조선 여인들의 삶이다.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 박물관’으로 발을 옮겼다. 이르쿠츠크를 얘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데카브리스트 사건이다. 데카브리스트는 1825년 러시아 최초로 근대적 혁명을 꾀한 귀족 청년장교들을 일컫는 말이다. 12월(러시아어로 데카브리)에 혁명을 일으켰다 해서 데카브리스트로 불린다.
일찍이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데카브리스트들은 전제군주제와 농노제 타파를 요구하며 혁명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핵심 주모자 5명은 처형됐고, 120여 명이 시베리아로 유배당했다. 이들은 이르쿠츠크 인근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데카브리스트들은 10년여 강제노역을 마치고 이르쿠츠크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사재를 털어 이곳에 연극·오페라 극장을 지은 뒤 수시로 공연을 했다. 수도 페테르부르크에서 유명 예술인들을 불러 초청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 최고의 문화도시로 거듭난 배경이다.

대표적인 데카브리스트 세르게이 볼콘스키 공작의 집은 당시 이르쿠츠크 인텔리들이 모여 시 낭송을 하거나 음악회를 열고, 정치토론을 벌이던 장소다.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그의 집에서는 지금도 그때의 전통을 이어받아 콘서트와 문학의 밤 행사가 열린다. 우리 일행을 위해서도 콘서트가 열렸다. 피아노 연주와 성악이 어우러진 멋진 연주회였다.

러시아판 열녀, 데카브리스트의 아내

귀족의 특권과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데카브리스트들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다.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은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이다. 당시 황실은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에게 ‘반역자인 남편을 버리고 귀족 신분으로 재가를 하든지, 아니면 귀족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버리고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로 가든지 선택하라’는 명을 내렸다. 9명의 부인과 2명의 약혼녀 등 11명이 시베리아행을 택했다. 이들은 40여 일 동안 썰매를 타고 혹한의 얼음길을 달려 남편을 찾아갔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숙부뻘인 볼콘스키 공작의 부인 마리야(사진)도 사랑을 택했다. 22세의 꽃다운 나이에 한 살배기 아들까지 버리고 시베리아로 달려간 그녀는 갱 속으로 남편을 찾아가 그의 발목에 묶인 쇠사슬에 입맞추고 “이제야 내가 와야 할 곳에 왔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험한 일 한 번 해본 적이 없던 마리야는 손수 집안일을 돌보며 유형 기간 내내 남편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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