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문회보 기자가 본 북한 '나진·선봉 경제 특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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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 핵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는 요즘 북한 개혁.개방 1번지라고 하는 나진.선봉 경제무역특구는 어떤 모습일까. 최근 홍콩의 문회보(文匯報) 기자가 여행객으로 가장해 현지를 둘러본 뒤 13일 취재 내용을 보도했다.

◆거리는 중국의 1970년대=특구를 관광하려면 북한 입국심사 때부터 조심해야 한다. 특히 사진은 금물이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지린(吉林)성 훈춘(琿春)시에서 출국심사를 마치고 여행객 중 일부가 북한 지역을 향해 사진을 찍으려 하자 중국 관원이 제지했다. 그는 "북한 경비병이 망원경으로 감시하고 있으며 사진을 찍을 경우 북한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북한 경비병들은 입국 시 여행객 중 사진기 소유자들을 모두 파악한 뒤 출국 때 찍은 사진을 모두 검사했고 민감한 사진은 회수했다.

경제특구지만 광고판 하나 보이지 않고 신호등도 없다. 상품을 파는 가게도 찾기가 어렵다. 70년대 문화혁명 당시 중국의 거리 모습과 비슷하다. 노동신문 등 관변 신문과 TV는 있다. 그러나 TV 뉴스는 온통 정부 뉴스뿐이고 외국 소식을 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화선을 이용해 인터넷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외국인만 가능하다.

여행객들이 지켜야 할 규정도 많다. 예컨대 사진은 김정일 장군 동상이나 사진을 배경으로 찍어야 하고 차창 밖을 촬영하면 안 된다. 또 군인이나 군 시설 사진을 찍으면 곧바로 출국조치를 받는다. 심지어 현지 시장과 주민 생활 모습을 찍으면 처벌 대상이다.

◆외자기업은 중국이 싹쓸이=특구에 투자한 외국 기업은 모두 150여 개라고 북한 관리가 밝혔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90%는 중국 기업이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모든 합작사업은 중국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중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일부 직원은 월 수입이 5300위안(약 64만원)에 달한다. 비파도에 있는 북한 유일의 5성급 호텔인 영국 로열호텔은 홍콩계다. 이곳에서는 직원들의 월급을 아예 달러로 지급하고 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배급제다. 그러나 특구에는 성과급 제도가 있어 유능한 직원들은 월급을 더 받는다. 또 중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북한 직원 일부는 고객 서비스 교육을 받아 시장경제를 잘 이해하는 편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활은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멀다. 특구 내의 유일한 시장은 폭 10m, 길이 30m에 불과하다. 시골 장터 수준이다.

이곳에선 해산물과 양식.의복 등 생필품이 거래되고 있다. 중국 위안화는 바로 사용할 수 있고 상인 중 상당수가 중국어를 구사한다. 해산물 가격이 특히 비싼데 이는 중국인들이 오염이 안 된 북한산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식량 가격도 만만치 않다. 쌀 1㎏은 800~900원(한국 돈으로 약 6000원)에 거래된다. 이 정도면 북한인들에게는 사치품 가격이라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기념품 가게에선 인삼은 물론 곰 쓸개와 호랑이 뼈 술, 우표 등이 판매되고 있다. 수를 놓은 한 북한 공예품은 3000달러라는 고가에 팔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으며 방 3개에 거실 하나의 주택 가격은 7000달러 정도다. 공식 환율은 거의 의미가 없다. 북한 정부가 고시한 달러당 북한 원화 환율은 141원이지만 실제로 시중에서는 달러당 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나진.선봉 경제.무역 특구=북한이 중국식 개방을 실험하기 위해 91년 만든 경제특구. 당시에는 두 지역을 나눴으나 외자 유치 실적이 미미하자 2001년 합쳤다. 인구는 15만 명 정도다. 중국 지린성 훈춘과 인접한 지역이어서 여행객과 투자자 대부분이 중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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