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원 재산공개/슬금슬금“눈치만”/“하긴 하되 부작용없게”로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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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정치적 치명상 입을 수도” 투덜/언론공표·의무실사엔 거의 반대
민자당이 소란스럽다. 이미 결정된 의원·당무위원(원외 포함)의 재산공개를 둘러싸고 마치 「굿 뒤에 날장구치는」격으로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다. 『대의는 인정하지만 선거때 음해가능성 등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언론에의 공표는 안된다』는 등의 신중론에서부터 『선출직인 의원들의 왜 강제로 재산을 공개해야 하느냐. 입각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하는 것이 옳다』는 등의 기피론까지 징징 우는 소리도 여러갈래다. 그러면서도 국회에 등록된 재산목록을 확인해 보완하랴,믿을만한 세무사·감정사 등을 찾아 자문하랴 마치 엉덩이에서 비파소리가 날 정도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소속의원·당무위원들의 반발이 작지 않았던 탓인지 8일 재산공개에 대한 민자당의 입장은 당초보다 상당히 후퇴한 듯한 냄새를 풍겼다.
당은 이날 확대당직자 회의에서 『재산공개의 범위·요령·내용은 당무회의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치고 협의에 따라 실시한다』고 밝혀 당장이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을 준 지난 5일의 고위당직자회의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당은 또 내주로 잡았던 재산공개 시기를 청와대비서진과 정부부처장·차관 재산공개가 끝난 뒤의 시점으로 고쳐잡았다.
이같은 입장선회를 입증하듯 당직자들의 태도도 신중하게 바뀌었다. 개혁에 관한한 속도 조절을 강조해왔던 김종필대표는 재산공개에 대해 『사회 일부에서 신판 인민재판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김영삼대통령의 재산공개방식이 기준이 될 것이나 개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공개 재산의 실사여부와 관련,『필요가 있을 경우 해야 할 것』이라며 의무적인 실사에 반대했다.
최형우사무총장도 당초의 강경입장에서 다소 후퇴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 총장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재산공개 범위·추진속도 등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라는 청와대의 의지가 전달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총장은 그래서 9일 등록대상에 동산은 각자의 재량에 맡기고 공개된 재산에 대한 실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지도부의 이같은 신중추진 입장표명에도 불구하고 의원·당무위원들의 불안·초조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재산공개는 어떻든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재력가로 알려진 민정계의 A의원은 『장·차관도 아닌 우리가 졸지에 재산을 공개해야 하는 것은 솔직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현재 분위기상 공개적으로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처럼 사업체를 가진 사람은 오히려 재산상태에 대해 설명하기에 편한 입장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속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나중에 재산 상황변동과 사업체 성장여부까지 추적해 꼼꼼히 비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밥맛이 떨어진다』고 불평했다.
5,6공을 거쳐온 실세 중진들도 애를 태우고 있다. 재산이 비교적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재산공개에 따른 여론이 자칫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때 정치적으로 치명상에 가까운 체면손상을 입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민자당은 재산공개 방법과 관련,언론을 통해 밝히는 것과 필요할 경우 일정한 절차를 거쳐 열람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언론에의 공표와 실사는 민주계까지도 꺼려하고 있다.
민주계 D의원은 『재산상황이 활자화되고 실사까지 당할 경우 평가방법상 당초발표와 약간의 차이만 나도 정직성을 의심받게 되고 정적들의 음해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며 열람형식을 통한 공개만을 주장했다.
당은 또 재산공개 범위를 직계존비속까지 포함하기로 했다. 공개대상으로는 김종필대표가 광업권·어업권 등 무형재산과 서화·골동품·무기명채권 등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부동산·예금·주식·승용차·골프회원권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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