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복역끝에 풀려난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잃어버린 「명성」되찾겠다”/3천6백여권 독서… 옥중서 시집내기도/냉수마찰·만보걷기로 감기한번 안걸려
「5공 최대의 경제사범」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라졌던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53)이 6일 안양교도소에서 가석방됐다.
지난 85년 15년형을 선고받고 경제사범으로는 가장 긴 10년을 복역한 그는 마치 『긴 세계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라며 우선 『앞으로 관광·레저업계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다시 일해보고 싶다』고 강한 재기의사를 보였다.
몇번이나 가석방 소문이 나돌다 물거품이 된 때문인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풀려날 줄 몰랐다』는 그는 『문민정부가 들어선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나름대로 의미를 풀이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5공정권의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잘라 말하고 『하지만 아직 좀 더 많은 세월이 더 지나야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당시 모두 1천2백80만평이었던 명성그룹 소유의 땅은 사건이 터진뒤 상업은행의 관리를 받다가 이제는 대부분 한화그룹으로 넘어갔다.
또 세월은 흘러 당시 명성사건을 담당했던 대검 김두희중수부장은 현재 검찰총장이 되었고 수기통장을 찾아낸 주역이었던 국세청 추경석 조사국장은 국세청장에 올랐다.
교도소에서 3천6백권의 책을 읽었다는 김씨는 수감생활동안 두권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10년이라는 장기복역에도 김씨는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만큼 건강한 얼굴이었고 감기와 몸살조차 한번도 앓지 않았었다.
냉수마찰과 만보 걷기를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는게 스스로 꼽은 비결.
한편 그가 이날 가석방된뒤 곧장 서울 성내동 중흥교회에서 가진 축하예배에는 출소소식을 들은 명성그룹 옛직원 20여명도 참석했다.
이들과 함께 그룹을 다시 일으킬 것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그런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나 막연한 감정에 불과할뿐 현재로선 현실성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사기꾼 집단」이라는 잃어버린 명성의 명예만은 내손으로 꼭 다시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이철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