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손끝서 장맛 살아나요|양천구「할머니 봉사대」 발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장맛은 손끝 맛이야. 우선 물 한말에 소금을 2되반 정도 넣고 적당히 풀어준 다음에…』
「×표 간장」「××식품 즉석된장」등 인스턴트 식품에 밀려 점차 사라져 가는 옛 장맛이 할머니들의 손끝에서 되살아난다.
서울 양천구 이옥희할머니(78) 등 5명의 할머니들이「할머니 솜씨봉사대」를 발족, 절차가 번거롭고 까다롭다는 이유 등으로 주부들이 꺼리는 장 담가주기를 통해 이웃간의 정을 확인하고 조상의 솜씨를 전해주는데 앞장서고 있다. 할머니 솜씨봉사대 연락사무실은 양천노인회((646)0037). 주문이 들어오면 할머니들은 노인회 할아버지들에게 길일(길일)을 묻고 할아버지들은 책력을 보고 날을 잡아준다.
장 담그기에 가장 좋은 달은 주로 음력 1월과 3월. 12지중 말(우)날이 길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음력3월(양력 3월23일∼4월21일)을 앞두고 할머니 봉사대는 20여 가구로부터 주문을 받았다. 『장맛은 메주 맛에 달려있어요 . 메주가 제 맛을 내려면 곰팡이가 알맞게 피도록 제대로 말리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바람이 잘 드는 곳을 골라 메주끼리 닿지 않도록 매달고 정성으로 말려야 된다우』
이옥희할머니가 전하는 장 담그기 요령. 이할머니는『메주 빚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간 맞추기』라고 설명한다. 소금양이 너무 많아도, 또 너무 적어도 장맛을 버리기 때문에 경험으로 터득한 간 맞추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봉사대 할머니들의 고향은 경북상주·전남광주·충남서천 등으로 각기 달라 고향의 장맛 겨루기를 하며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결혼 초기만 해도 친정에서 된장·간장을 조금씩 떠다 먹었는데 올해는 할머니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집에서 담기로 했어요』
할머니 봉사대에 장 담그기를 부탁한 주부 이원섭씨(30·신정5동)는 『더 늦기전에 전통 장 담그기를 배우고 싶어 지난달 할머니들을 모셨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에게 지급되는 수고비는 보통 1만원내외. 도움을 받은 가정에서 5천원을 내고 양천구청측이 5천원을 지원한다.
이밖에도 일당 5천원씩을 받고 이불바느질·베갯잇 갈아주기 등 잔손질이 많이 가는 일을 맡아 꼼꼼한 솜씨를 발휘하기도 한다.
양천구 주부들은「비록 나이가 들었어도 젊고 건강하게 살고싶어 이웃을 돕는다」는 할머니들이 장 담그기 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 전해주는「스승」노릇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정형모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