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개입 드러나 일파만파/「장씨 지시」밝혀진 용팔이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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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두 이씨,「자금뿌리」확인되자 털어놔/박철언씨 등 당시 재직자 수사 주목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일명 용팔이사건)에 장세동 전안기부장이 직접 개입했음이 밝혀짐에 따라 이 사건이 정치권에 일파만파의 회오리를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이택돈·이택희 두 전의원의 「장씨 직접개입」폭로는 지금까지 심증 수준에 머물러 왔던 안기부의 사건개입을 사실로 확인시켜주는 것이어서 앞으로 검찰수사 진전에 따라 이 사건의 여파는 정치권으로의 확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구속중인 이택돈 전의원은 최근 조사과정에서 장씨 개입사실을 고백했고 5일 오후 검찰에 출두한 이택희 전의원도 같은 내용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장세동씨에 대한 사법처리는 물론 당시 안기부 제1차장(국내 정치담당)이었던 이해구내무부장관과 정치과장 H씨 등이 수사대상에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당시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으로 이 사건에 직·간접으로 개입됐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박철언국민당의원에 대한 검찰수사도 불가피한 입장이다.
안기부가 이 사건을 배후조정 했다면 이들이 누구보다도 사건전모를 가장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조사 결과 두 이 전의원의 명의로 된 1억∼7백만원 단위의 가명계좌 5∼6개가 새로 발견됐고 이택희 전의원이 운용한 활동자금도 과거 수사에서 확인된 5백만원 이외에 최소한 5천만원이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 자금이 안기부의 모증권회사 비밀계좌에서 수표로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두 이 전의원은 이같은 정황증거가 속속 드러남에 따라 심경변화를 일으켜 최근 장세동씨의 개입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이 전의원의 진술에 따르면 이들은 사건 직전 장세동씨를 만나 사건을 지시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검찰수사는 앞으로 장씨 등을 소환,실체를 밝히기에는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당장 장씨가 사건개입을 인정할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해구장관도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안기부 직제상 1차장이 국내문제를 담당한 것은 사실이나 사건내용만 사후에 보고받았을 뿐』이라면서 『이 사건에 전혀 관련이 없다』고 직접 관련설을 적극 부인하고 있다.
박철언의원 또한 『북방외교에 매달렸을뿐 관련이 없다』며 자신의 개입설을 부인하고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수사가 어느정도 결실을 볼지는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치않다.
또한 비밀엄수를 생명으로 하는 안기부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수사가 진척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역시 회의적이다.
그러나 검찰관계자는 이 사건 수사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송사리 한마리 빠져나갈 수 없는 탄탄한 그물을 짜놓고 나서 본격적으로 칼날을 들이댈 것』이라고 말해 대어를 옭아넣을 준비가 완료됐음을 시사했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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