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개입으로 전쟁발발…스티코프가 적극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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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국 전쟁은 당시의 냉전상황이 빚은 비극입니다. 그러나 소련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전쟁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49년부터 51년까지 평양주재 소련대사관 공사겸 참사관을 지내면서 한국전을 깊숙이 지켜본 그리고리 퉁킨 러시아 국제법학회회장(87).
그는 4일 서울국제법연구원(원장 백충현 서울대교수) 초청으로 내한, 회견을 갖고 소련의 전쟁개입 및 남침을 재 확인해 주었다.
소련의 개입사실에 대해 퉁킨박사는『전쟁 직전(날짜를 기억 못함)스탈린은 모택동에게 장문의 전문을 보내 작전계획을 알려주면서 전쟁준비 태세를 갖춰달라고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당시 평양대사관에도 보내온 이 전문을 보았다는 퉁킨박사는 그러나 김일성과 스탈린간에 오간 암호전문, 소련군의 지원규모 등에 대해선 아는바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당시 장군출신의 스티코프대사가 사실상 북한과 소련의 가교역할을 맡아 모스크바를 들락거리면서 전쟁을 주도했습니다. 스티코프는 미국의 개입을 우려한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 전쟁을 적극 밀고 나갔어요』
부임후 김일성과 함께 곧잘 테니스를 쳤다는 그는『김일성은 50년 7월까지 평양의 미 선교사집을 숙소로 쓰면서 스티코프등과 작전계획을 숙의했다』고 회고했다.
김일성에 대해 그는『2년 남짓 가까이서 본 김일성은 훌륭한 사람(Nice Man) 이었다』면서 그러나 전쟁후 권력을 장악한후 그는 딴사람이 됐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전에 대한 소련의 국제법적 책임과 관련, 『최선의 방법은 악몽을 잊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꼬리를 돌린 그는『오늘날 러시아-북한은 과거의 형제관계에서 평범한 국가간 관계로 변했다』고 했다.
『유럽안보회의(CSCE)처럼 아시아에서의 집단 안보기구 창설은 국가간 분쟁해결과 위기상황 타개에 한몫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구는 유엔의 하부기관으로서 유기적인 협조를 해야합니다』
아시아 집단안보 구상에 찬성의 뜻을 밝힌 그는 『앞으로 국제법이 개별 국가내에서 강제력을 가지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이 평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퉁킨박사는 51년2월 모스크바로 돌아온 다음에는 학계에 투신, 57년과 65년부터 지금까지 각각 소련(현재 러시아) 국제법학회회장 및 모스크바대학 국제법학부 주임교수를 맡고있는 국제법학계의 거두다. <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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