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안 받겠다』 선언(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영삼대통령이 획기적인 선언을 했다. 재임중 정치자금을 한푼도 받지 않을 것이며,과거와 같은 정치자금 암거래나 정경유착현상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다짐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대통령의 이같은 결심은 정치개혁의 첫걸음이자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대전제가 아닐 수 없으며 우리는 이를 환영해 마지 않는다.
사실 지금까지 청와대가 재계로부터 정치자금을 만들고 그 돈으로 여당을 지원하고 선거비용으로 썼다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었다. 맨 꼭대기의 대통령서부터 이런 합법적이지도,떳떳지도 않은 돈을 받았으니 그와 그의 정부는 또는 여당이 겉으로 아무리 깨끗한 정치니,부패척결이니 하고 얘기해봐야 영이 설리가 없었다. 사정을 담당하는 집권세력 스스로가 국민이나 기업 또는 하위공직자에게 돈먹지 말라,부정하지 말라고 말할 자격을 상실하고 들어갔던 것이다. 따라서 새 정부가 과거와 다른 진정한 개혁을 추진하자면 스스로의 「사정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 일의 맨 첫단추가 바로 검은 돈의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 대통령의 선언은 문제의 정곡을 찌른 것이며 이제부터 그의 결심을 실천에 옮길 제도와 정당운영의 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정치에는 어차피 돈이 필요하다. 문제는 필요한 돈을 가급적 줄이고 합법적·양성적으로 조달,지출하는 방안이다. 우리가 보기에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하는 금융실명제의 실시가 전제돼야 하겠지만,당장 정치권이 할 수 있고 착수해야 할 일은 정당과 선거제도의 개혁이다. 우선 방대한 운영자금이 들어가는 정당부터 조직축소·유급당원감축·검소한 운영 등으로 비용을 대폭 줄여야 한다. 그리고 대규모 목돈이 들어가는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 공영제확대·자금사용에 대한 감시강화 및 엄벌주의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의 선거제도를 사실상 부자만 정치할 수 있는 부인정치제도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런 자금의 자출요인을 줄이는 방안과 함께 조달에 있어서도 후원회 및 후원인의 확대,당원의 헌금장려,선관위 기탁확대 등 합법적·양성적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여기서 정치자금의 조달·지출에 관한 구체적 개혁방안을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지만 여야는 곧 스스로의 감량과 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의 연구에 착수해야 하고 빠른 입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김 대통령의 이번 선언으로 정계에서 정치개혁의 청신한 바람을 기대한다. 정치부패를 추방하자면 대통령의 결심과 강한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대통령의 결심이나 선언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받지 않는 대신 당이나 다른 기관이 음성적으로 조달하면 결과는 마찬가지다. 김 대통령의 결단을 현실화할 구체적 개혁방안들의 빠른 가시화를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