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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봉쇄→개방 수난의 청와대 앞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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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승만대통령땐 안뜰까지 “활짝”/유신때 「육 여사 피살」후 전면통제/6공선 “발표”만 해놓고 흐지부지
문민정부 출범에 때맞춰 청와대 앞길이 25일 정오부터 일반시민에게 전면개방됐다.
이경재청와대공보수석은 김영삼대통령 취임을 하루 앞둔 24일 『청와대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이웃이 돼야 한다』며 청와대 주변도로중 ▲청와대 앞길은 주간에만 영업용을 포함한 모든 소형승용차·관광버스의 통행을 허용하고 ▲청와대 서쪽 효자로는 오전 6시부터 밤12시까지 ▲청와대 동쪽 팔판로는 24시간 화물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에 대해 개방한다고 밝혔다.
「금단의 지역」으로 일반시민의 접근이 차단되어온 청와대 주변은 그러나 당초부터 요즘같은 특별지역은 아니었다.
경무대로 불리던 이승만대통령 시절에는 훨씬 공개된 장소였다.
6·25의 혼란이 수습되고 치안이 어느 정도 안정된 57년 이후 경무대는 날짜·시간을 정해 일반에게 공개됐고 상춘객이 몰리는 4월엔 안뜰까지도 출입이 허용됐다.
57년 벚꽃구경갔던 어느 산모가 안뜰에서 딸을 낳자 이 소식을 들은 이 대통령은 즉석에서 경무대의 첫글자를 따 김경숙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별명으로 「경무대 동이」라고 부른 경숙양은 아홉달째 되던 이듬해 1월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경무대를 다시 찾아 이 대통령 내외와 기념사진을 찍었고 미망인 프란체스카여사는 88년 그 사진의 주인공을 찾은 끝에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던 경숙씨와 30년만에 재회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민에게 열려있던 청와대 앞길이 봉쇄되기 시작한 것은 68년 1월21일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부터. 박정희대통령은 74년 광복절 육영수여사 피살사건 뒤 이 일대를 전면통제해버렸다. 이때문에 일반 시민들의 교통불편도 컸지만 인근 주민들은 여러모로 손해와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청와대 앞길 통행은 80년말인 5공초 효자동·팔판동 일대에 부분 허용됐다가 83년 10월 미얀마(구 버마) 아웅산 폭발사건뒤 다시 통제됐고 6공이 들어선 88년 2월 다시 개방하겠다고 발표만 해놓고는 흐지부지된 채 통제돼오다 이번에야 전면 개방된 것이다.
새 정부는 청와대 앞길 뿐만 아니라 경호상 이유로 출입을 통제해왔던 인왕산 전지역 등산로도 완전히 개방한다고 밝혀 청와대 일대는 68년 이후 사실상 25년만에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셈.
팔판동에 사는 허성행씨(57·사업)는 『청와대 앞길이 활짝 열려 이제 사람사는 동네가 되겠다』고 기쁨을 표시하면서도 『이전처럼 또다시 개방·봉쇄를 반복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지레 걱정하기도 했다.<한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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