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자 조종』 오해 씻으려 결심/정주영씨 왜 의원직 사퇴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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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완전무결한 정계은퇴」 보여준 것/사법처리때 해될까 한때 우려도
정계은퇴선언 이후에도 의원직을 고수해 의혹을 받아온 정주영 전 국민당대표가 22일 마침내 의원직 마저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진짜」로 정계를 떠난 것이다.
정 전대표는 이날 동남아로 출국하기에 앞서 변정일 전 대변인에게 「사퇴발표」를,현대출신인 전국구 정장현의원에게는 「사퇴서 제출」을 지시했다. 변 전대변인이 전한 의원직사퇴의 변은 「완전무결하게 정계를 은퇴하기 위해」라는 것이었다. 정 전대표는 공항에서 이에 대해 『정계를 은퇴했으니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공항에서의 육성은 원론이고,변 전대변인을 통한 전언이 그의 본심에 가까워 보인다. 현대측 인사들은 정 전대표의 정계은퇴를 간곡히 건의해 「정계은퇴」까지는 성사시켰는데 마지막까지 정 전대표가 의원직만은 고수하려고 해 걱정했다고 한다. 의원직고수의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정 전대표가 분명히 「고수」의 뜻을 밝힌데는 아무런 직함이 없는 정 전대표가 앞으로의 대외활동에 의원직이 도움이 되고,앞으로 있을 사법처리과정에서도 결코 해는 되지 않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의원직 고수가 현실에서는 반대로 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 가능성이란 정계은퇴의 뜻을 분명히 한 정 전대표가 다시 「리모트 컨트롤」 방식을 통해 정치를 계속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들이 생기면서부터다. 이는 정 전대표가 막대한 투자를 했던 국민당을 포기하고 정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즉 김영삼차기대통령에 대한 「사과」의 메시지와 배치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상황도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킬만 했다. 정 전대표는 정계은퇴후 울산에 칩거하면서도 국민당의 측근들에게 일일이 연락,「탈당」을 종용했다. 그 결과 국민당의원들이 무더기로 탈당,국민당은 불과 열하루만에 교섭단체 자격을 잃었다. 특히 국민당의 원내교섭단체 자격이 상실되는 순간이었던 지난 20일에는 7명이 무더기로 탈당해 「리모트 컨트롤」의 가능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이어 정 전대표는 국민당의 와해가 완료된 20일 오전 전력 상경,계동 현대본사빌딩에서 간부들과 식사한뒤 오후에는 성북동 현대영빈관에 앉아 탈당의원들 10여명을 개별적으로 불러들였다. 이를 전후해 일부 탈당의원들 사이에서는 「무소속 동우회」 결성이라는 집단적 움직임 조짐까지 나왔다. 당연히 정 전대표가 이들을 새로 묶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리라는 추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를 두고 정 전대표의 실질적 정계복귀 가능성을 점치기는 이르다. 우선 이는 정 전대표의 정계은퇴가 뜻하는 김 차기대통령에 대한 「사과」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한 소식통은 『정 전대표는 분명히 정계를 떠났다. 김 차기대통령에게 항복한 사람이 무슨 다른 뜻을 도모하겠느냐. 오히려 그같은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해야 옳은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바로 이같은 「오해」를 받을까봐 갖고 싶었던 의원직마저 내놓았다고 봐야 옳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 전대표는 탈당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영빈관에 불렀다. 또다른 정치모임을 꾸민다면 당연히 함께 머리를 맞대야 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도 정 전대표는 정치얘기는 한마디도 않고 오히려 정계를 떠나는 마당에 관계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그동안의 과정,특히 지역개발공약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 등에 미안해하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한 의원은 『민자당에 입당하는 사람도 있고 무소속으로 남을 사람도 있을텐데 무소속으로 남을 경우 「동우회」 형식의 모임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있다. 하지만 모임결성이 아직 시작된 것도 아니고 정 전대표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확언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봤을때 정 전대표의 의원직사퇴는 사업차출국에 앞서 마지막으로 정치에 구두점을 찍은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현대그룹측에서도 「왕회장」의 일선복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준비에 부산하다. 이번의 출국도 최근 수주한 싱가포르 창이공항 확장공사 현장과 말레이시아 석유화학공단 건설현장을 답사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의든 타의든 그의 정계은퇴는 이제 확실해진 것으로 보인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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