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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폴링 다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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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작년 국내에 개봉됐던 케빈 코스트너의 제작·주연 영화 『늑대와 춤을』은 미국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인디언문화를 긍정적 시각으로 묘사해 화제가 되었을뿐 아니라 흥행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영화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수많은 미국영화속의 인디언이란 대부분 호전적이고 비협조적이며 문명과 동떨어진 가난하고 불결한 이교도들이었다. 그래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용감한 미국기병대나 서부사나이들의 희생물이 되는게 정형처럼 돼 있었다. 『늑대…』은 바로 그 정형을 파괴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금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원주민이 해」. 강대국의 힘의 논리와 몰이해속에 고유한 문화와 삶을 빼앗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던 이른바 「제4세계」에 대한 관심을 유엔이 공식적으로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속에 세계영화계는 원주민을 소재로한 영화제작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그렇게 제작된 영화들이 잇따라 수입돼 국내에 상영됐다. 『늑대…』은 물론,프랑스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베트남인들의 자각을 그린 프랑스영화 『인도차이나』,미 대륙발견 5백주년에 맞춰 제작된 두편의 콜럼버스에 관한 영화,그리고 1930년대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유럽의 식민정책과 종교박해를 그린 『파워 오브 원』 등이 바로 그런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은 대부분 라스트 신에서 원주민들이 외세의 핍박에서 깨어나 저항하는 모습을 그린게 하나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강대국 영화들의 뒤늦은 자성을 뜻하는 것일까.
그러나 원주민 영화하고는 성격이 다르지만 미국영화속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인종적 편견은 여전한 것 같다. 바로 오는 26일부터 미국 전역에 개봉될 예정인 『폴링 다운』(Falling Down)이란 영화에서 한국인을 「영어도 못하면서 돈만 밝히는 사람들」로 묘사함으로써 교포들의 분노를 사게 만들었다. 영화에서의 인종문제나 소수민족문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근 『말콤 X』를 만들어 화제가 된 스파이크 리감독의 89년도 작품 『옳은 일을 해라』라는 영화속에는 뉴욕의 한국인 상점들이 흑인들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3년뒤 LA폭동사건이 터진 것은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로운 일이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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