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한 원장님' 알고 보니 무면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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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 대치동 B 피부.비만클리닉의 장모(43)씨는 강남 아줌마 사이에선 '실력있는 원장'으로 통한다. 1년 넘게 피부.비만치료 시술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부작용이 없었다. 비용도 인근 병원에 비해 50% 정도 쌌다. 그의 클리닉은 늘 환자들로 가득찼다. 그러나 장씨는 의료기기 영업사원 출신이다. 의료면허도 없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9일 장씨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지난해 9월 서울 대치동 상가에 피부.비만 클리닉을 차렸다. 최근까지 주부 960명에게 복부비만 치료, 주름살 제거, 레이저를 이용한 점.기미.주근깨 제거 등 무면허 시술을 했다. 장씨는 모두 1억3000만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장씨는 10년간 의료기기를 판매하기 위해 병원을 드나들었다. 이 과정에서 피부.비만치료 시술 방법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장씨는 대학 때 전자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의료기기의 작동법을 쉽게 배웠다고 한다. 의료기기 판매업이 시원치 않자 장씨는 '전업'을 결심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장씨는 레이저 치료기와 비만주사 투여기 등 최신 장비를 들여놓는 데만 2억원을 썼다. 피부.비만 전문 병원으로 보이기 위해서였다. 의사처럼 늘 흰 가운을 입었고, 간호조무사.피부관리사 등 전문 자격증 소지자를 고용했다. 강남에선 '싸고 용한 병원'이라는 입소문이 났다.

장씨는 레이저를 이용한 피부 관리와 지방분해 주사를 통한 비만 치료를 주로 했다. 보톡스 주사도 놓았다. 환자 1인당 5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400여만원까지 받았다. 보톡스 주사는 간단한 시술이지만 장씨의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의료법 27조1항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보톡스의 농도와 배합을 결정하는 것은 전문 지식을 갖춘 의사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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