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희생 않는 긴축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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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통의 분담에는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저성장시대일수록 예산 긴축운용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강하지 않고서는 가계와 기업,그리고 근로자들을 설득시킬 도리가 없다. 정부가 턱없이 선심예산을 쓰면서 국민에게 절약을 호소하거나 과도한 임금인상의 자제를 거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시기에 김영삼차기대통령이 절약차원에서 올 예산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그러나 정부의 예산조정은 낭비요소를 철저히 제거해 각종 사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진행되어야 하며,자칫 형식적 긴축에 그친 나머지 재정 본래의 기능을 그르쳐서는 안된다. 과거에 어려운 시절마다 정부가 앞장서 예산절약을 추진해 왔으나 그것이 도로와 항만·철도사업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까지 중단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렇게 허둥댄 긴축예산 집행의 결과는 몇년후 산업 전반의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산은 나라살림을 꾸려나가는 구체적인 계획이다. 국민으로부터 거둔 돈은 우리의 다음세대가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도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한 재정의 기능이다. 따라서 예산은 꼭 써야할데는 반드시 써야하며 긴축이라고 해서 과거와 같이 사회 전반의 효율성과 관련된 사업들을 연기하거나 중단해서는 안된다. 이런 사업들은 앞으로의 경기대책과도 밀접히 연관된 것들이다. 세계적인 경기불황과 때를 맞춰 선진국이 검토하고 있는 재정의 긴축은 21세기 초반의 자국의 지위와 다음세대의 성장기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추진되고 있음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새정부는 어떤 것이 불요불급한 사업인지 또는 경상비 항목 가운데 어떤부분을 깎아낼 수 있는 것인지를 정밀하게 따지는 절차를 거쳐 실행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정부 조직개편에 따른 체육청소년부와 동자부의 예산조정 등을 포함한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올 예산편성때 끼어든 국회의원들의 지역사업과 대통령 선거공약에 따라 무리하게 집행하려는 사업에 대해서도 신규 또는 계속 투자여부가 검토돼야 한다. 몇몇 사업들은 경제성에 의문이 제기된 것도 있다. 우선 순위가 낮은 사업을 뒤로 미루고 낭비적 지출을 과감히 없애는 예산의 재조정이야말로 새정부가 거듭 강조하는 개혁작업의 커다란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할 일이다.
예산지출 구조를 변경할 사항이 발생하면 삭감을 전제로한 추가경정 예산편성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감축을 위한 추경예산 심의에는 정부·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의 식견과 주장의 반영이 필요하며 거기에서 우리는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경제논리를 개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경상비 지출 10% 절감」하는 식으로 무조건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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