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돋우는 불량 가사용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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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햇살이 퍼지는 아침나절 반짝반짝 깨끗이 닦인 장독을 바라보는 일, 남편·아이들의 잘 다려진 옷을 보는 일. 주부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뭐니뭐니 해도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은 홑청을 하얗게 꿰매 놓은 이불을 장롱 속에 개어 넣을 때다.
그런데 오늘은 그 감미롭던 만족감이 형편없이 구겨지는 날이었다.
이불 한 채를 다 궤 매지 못했을 때 바늘이 세 개나 부러졌다. 이웃에서 빌려 온 바늘마저 낚싯바늘처럼 휘어 버렸다.
「성한 것이 없나」하고 실 꾸러미를 더듬었지만 쓸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굵은 바늘, 곤 바늘, 재봉틀바늘까지 부러지고 휘고 귀떨어진 것들만 손에 잡혔다.
「며느리한테 물려 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옆집 아줌마가 준 일제바늘을 잃어버린 것이 다시금 아쉬운 순간이었다.
10년 넘게 썼는데도 거뜬했던 바늘이었다. 슈퍼나 잡화상에 가면 잃어버린 바늘처럼 바늘귀가 노란 것들이 일제랍시고 팔리고 있지만 값만 비싸지 쉽게 부러지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왜 하찮은 바늘 하나조차 제대로 못 만들까.
1회용 고무장갑도 처음 쓸 때 입 바람을 이용, 펼라치면 손가락사이 이음새가 벌어지는 것이 다반사다..
화분에 물 주려고 얼마 전 사 온 분무기만 해도 그렇다. 어쩌다 불량품을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물이 잘 안 뿌려지고 뚜껑사이로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다음날 상점에 가서 항의했지만『잘못 써서 고장난 것』이라고 막무가내 버티는 게 우리의 상도의 수준이었다.
오래 전에 뜸 잘 든다고 일제 코끼리밥솥 구입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 시원찮은 국산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성능 좋은 외제사용 품을 찾게 마련인 게 주부들의 보통 심정이다.
주부들이 짜증 돋우지 않고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가사용품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황인필<경북 상주군 함창읍 오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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