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明暗 “팔아도 남는 것 없어” vs “생산성 높이는 계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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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19면

청소ㆍ목욕 용품에 쓰이는 고기능성 극세사를 생산하는 은성코퍼레이션은 지난 몇 년간 ‘환율과의 전쟁’을 벌여 왔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363억원 중 240억원을 수출로 거뒀다. 하지만 상처도 컸다. 2000년 이후 달러 기준으로 수출액은 꾸준히 늘었지만 환율이 떨어지면서 매출은 정체상태에 빠졌고 2005∼2006년 연속으로 적자를 냈다. 하지만 회사 관계자는 “환율 하락폭에 비하면 그래도 선방한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기업은 환율이 추락을 거듭하자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우선 2000년 96%에 달하던 수출 비중을 사업다각화를 통해 지난해에는 66%로 낮췄다. 고정적인 국내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 최근에는 한방 생리대 업체를 인수하기도 했다. 또 해외 고정거래처에는 대금의 절반 정도를 원화로 결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기술력에서 자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환변동보험과 파생금융상품에도 가입해 지난해에는 약 5억원 정도를 보상받을 수 있었다.

다른 중소기업들의 사정을 보면 “선방하고 있다”는 이 회사 관계자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2001년 42.9%였던 수출 비중은 지난해 32%까지 떨어졌다. 1000만 달러 이하 수출업체 수는 2005∼2006년에만 10% 이상 감소했다. 중국ㆍ동남아의 저임금에 밀리는 데다 브랜드나 마케팅력도 부족한 탓에 환율의 압박을 그대로 받은 것이다.

물론 골머리를 앓고 있기는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경우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영업이익이 200억원씩 준다. 그래도 중소기업보다 사정은 훨씬 낫다. 반도체ㆍLCD 등의 생산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환율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작다. 또 원화 강세는 장비ㆍ재료비의 수입가격 부담을 낮춰주는 효과도 있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환율 하락이 2∼3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이뤄져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수출을 이끄는 것은 ITㆍ중화학공업 등 자본집약형 장치산업이다. 고용유발 효과가 전통 제조업에 미치지 못한다. 이들 산업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수출과 내수 경기의 괴리’는 더욱 심화됐다. 최근 조선업 등 전통 업종이 활황세를 타자 이런 상황이 반전될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저환율 시대’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의 엔저 때처럼 우리 대표 기업들도 피나는 원가절감 노력을 해 글로벌 기업을 추월할 만큼 생산성이 높아진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단 혹독한 시련을 넘기고 나니 체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또 원화 강세로 물가가 안정되고 유학이나 해외여행 부담이 주는 등 소비자들의 후생이 증가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효과다. 이경태 대외경제연구원장은 “환율 하락은 내수기업의 이익을 늘려 소비를 살리는 데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면서 “그간의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의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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