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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구호만으론 안된다”/김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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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민자당은 9일 모처럼 환한 얼굴로 세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대입부정으로 사회공동체가 중병을 앓고 있어 집권당으로서 마음이 편치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올해 생일은 자축할만하다. 불안·초조·갈등·잡음으로 범벅이 된 지난 3년의 암울한 터널을 벗어나 정권을 창출했으니 말이다.
민자당은 이날 자립을 선언했다. 당총재인 김영삼 차기대통령은 『우리 당은 이제 국민속에 뿌리박은 자생정당이 됐다』고 천명했다. 김종필대표는 「국민정당」이라고 표현했다.
대선의 성적표로 보자면 이런 자긍심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양대선거에서 민자당을 가슴졸이게 했던 국민당이 8일 정주영대표 기소와 의원탈당의 먹구름속에 창당기념일을 맞은 것과는 대조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선승리가 민자당의 모든 것을 합리화해 주지는 않는다. 국정이란 잣대로 보면 민자당에는 아직 자립이란 칭송이 어울리지 않는다. 민자당은 성취보다는 해결해야 할 숙제를 훨씬 더 많이 안고 있는 예측불가의 수험생이나 다름없다.
우선 민자당은 좀처럼 도달하기 어려운 개혁이란 목표를 정해놓고 갈피를 못잡고 있는 형국이다.
부정부패척결을 외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할지 이행전략이 마련돼있는 것 같지는 않다. 부정방지위 하나만 놓고봐도 이제 겨우 당과 대통령직인수위가 조사권을 줘야 한다,말아야 한다로 논란을 벌이고 있는 단계다. 준비되지 않은 평상체제하의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주체세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개혁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솔선수범하려는 각오와 치밀한 이행전략이 뒷받침돼야 성공할까 말까다. 깨끗한 정치를 위해 뭔가 하나씩 실천해야 하는데도 「여당은 사정이 다르다」며 움츠리고만 있다. 체육청소년부·동자부는 기습적으로 없애려하면서도 자체감량에는 시간만 끌고 있다.
인사면에서도 새바람이 얼마나 불지 실감나지 않는다. 새인물·개혁의지에 발맞추려 하기보다 구태의연한 옛날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과거의 출세인사들이 해바라기처럼 또다시 몰려들고 있다.
지난 3년간 민자당은 우울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여론조사를 하면 지지율은 항상 낙제점이었다. 민생은 자꾸 어려워지는데 당은 권력다툼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자당은 대선에서 국민의 시험을 잘 치러냈다. 지역감정 등 여러 변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은 향후 5년을 민자당에 맡겼다. 민자당이 밝은 청년기를 건설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눈이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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