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인 정일근·안도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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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정일근(46) 시인과 익산의 안도현(43) 시인이 첫 대면한 것은 1980년이다. 대구 영남대에서 주최한 천마문학상에 안씨가 시부문에 당선되고, 정씨가 소설 부문에 당선없는 가작을 받아 만난 자리에서 1박2일간 통음한 것으로 두 사람은 인사를 텄다.

이후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엇비슷한 경력을 쌓아왔다. 84년 안씨가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정씨는 이듬해 한국일보로 문단에 나왔다. 85년에는 나란히 국어교사가 됐다.

시단에서 주목을 받는 데서는 안씨가 한걸음씩 빨랐다. 96년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을 받은 데 이어 98년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상을 받은 정씨는 젊은 시인상은 2001년, 소월시문학상은 지난해 받았다.

'전업'으로의 전환도 안씨가 조금 빨라 안씨는 96년, 정씨는 98년부터 각각 시를 생업으로 삼고 있다. 걸어온 길이 비슷하다고 저절로 친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은 정서적 끈끈함보다는 동지적 긴밀함으로 묶인 사이다.

정씨는 안씨를 "호남 문인과 영남 문인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문단의 노둣돌 같은 친구"라고 평했다. 안씨는 "일근이형과는 민중적 서정시라고 할까, 시적 지향점이 비슷해 80년대부터 '시힘' 동인을 함께 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안씨는 인생의 주요 고비마다 정씨를 찾았다고 한다. 85년 신혼여행길에 마산을 찾아 정씨를 만났고, 96년 전업 결심 전에도 가족들을 이끌고 울산으로 정씨를 찾아갔다. 진로를 의논하기 위해서다. 분기에 한번은 안씨를 만난다는 정씨는 "시단에서 술 잘 먹는 진짜 술꾼은 안도현이다. 기분 좋게 취하고 주사가 없다. 다음날에도 가뿐하게 일어난다. 시는 주눅 들 정도로 잘 쓰고 인간적으로 따뜻하다"고 말했다.

안씨의 화답도 만만치 않다. "정일근 형은 굉장히 열심히 산다. 시도 열심히 쓰는 게 작품에 여실히 드러나지만 시인입네 하지 않는다. '시힘' 동인 모임에 일근이 형이 빠지면 맥이 빠질 정도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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