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부인들/사회봉사에 “재미”(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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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외이주 하며 “미진한 일 우편으로”
일본에서는 여기저기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부인네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또 부유한 환경이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부인들이 많다. 자녀들을 키워놓고 남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하는 사회봉사 활동들이다.
동경 신주쿠(신숙)구 아케보노바시(서교) 일본어회도 그같은 자원봉사 모임중 하나다.
신주쿠구 부인정보센터가 빌려준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강사 16명이 일본 주재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일본어와 생활안내 등 일본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이들은 주1회 2시간씩 초급에서부터 고급까지 무료로 일본어를 가르친다. 수강생은 대부분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일본에 체류중인 외국인 부인들이다. 이곳은 한국인 학교가 근처에 있는 탓으로 70명의 수강생중 67명이 한국인이다.
강사들은 대부분 여자로 외국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본어를 가르치는 한편 여성으로 과거 외국생활에서 어려웠던 점을 살려 일본생활에 익숙하도록 조언도 한다. 그런데 이들은 돈 한푼 받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열심일 수 없다.
아케보노바시 일본어회의 강사 이시이 도시코(석정이자·56)도 그중의 하나다. 그는 상사원인 남편의 직장 때문에 미국·스페인 등을 전전한뒤 3년전 귀국,이 모임의 강사를 하고있다. 그는 이 모임에 나와 가르치면서부터 하루하루가 무척 재미있다며 외국인과의 교유를 즐거워했다.
그는 항상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해 충분한 예습을 하고 시험문제 등의 프린트를 준비해 왔으며 학생들보다 더 열심이었다는 평이다.
이시이는 남편과의 저녁상 대화에서 자주 자신의 수업중 얘기가 화제로 등장한다고 밝히곤 했다. 그의 남편도 부인이 애착을 갖는 일이 생겨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날 이시이의 남편이 호주로 전근을 가게됐다. 이시이의 남편은 전근발령을 받은 날 『어떤일이 있어도 놀라지말라』고 몇번이나 다짐받은 끝에 자신의 전근사실을 밝히며 부인이 좋아하던 자원봉사 활동을 중단하게 된 것을 애석해 했다고 한다. 이시이는 이같은 사실을 밝히며 지난 2일 마지막 수업을 했다. 그는 마지막 수업날 학생들에게 자신의 주소가 적힌 봉투를 건네주며 『오늘부터 출국준비로 못나와 죄송하다. 그러나 교과서의 일어작문 문제를 풀어 보내주면 이를 채점해 다시 보내주겠다』고 했다. 자기가 가르치려던 부분은 마치고 떠나겠다는 것이다.
떠나면서까지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학생들을 위해 마음을 써주는 한 일본인의 마음에 고개가 숙여지더라고 이 모임에 나가는 홍승덕씨(42)는 밝혔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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