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해야 할 실업경보(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동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93년도 노동시장 전망은 비록 그것이 심각한 대량실업사태를 예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수급의 안정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전망에 따르면 93년의 실업률은 작년보다 약간 높은 2.6%에 이르고 1·4분기에는 3%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0% 안팎의 높은 실업률에 시달려온 여러 선진국들의 고용사정에 비추어 볼때 2∼3%에 머물고 있는 실업률 수지 그 자체는 왈가왈부할 거리가 못된다.
통계상의 함정을 지닌 실업률 통계보다는 우리 경제의 성장기조에서 발견되는 근본적인 변화들과 고임금 시대의 산업구조 조정,그리고 불완전 취업의 비중증가와 같은 구조적 현상을 들여다 보는 쪽이 고용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지름길이 된다.
우리가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에서 고용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세대를 이어온 고도성장기를 마감하고 성장률 6∼7%의 중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이 시기에는 불어나는 경제활동 인구를 흡수할만한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고 특히 작년과 같은 일시적 저성장은 노동시장의 수급불균형을 벌려놓을 위험이 크다.
이같이 장기추세적인 성장둔화가 고임금 시대로의 이행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노동수급의 잠재적 불안을 한층 심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수년간 진행된 빠른 임금상승은,비록 그 보다는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산업현장의 도처에 노동절약적인 구조조정을 촉발시켰고 섬유·신발 등 노동력 의존이 심한 산업들이 현저히 위축되는 양상을 보였다. 신규채용을 동결하고 자연감원을 기다리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도 예사로 볼일이 아니다.
실업률의 수치로는 전혀 파악되지 않는 불완전 취업의 문제 역시 악화일로에 있다. 주당 근로시간이 18시간 미만인 취업자를 실업에 포함시키면 실업률은 1%포인트 가량 올라가며 상대적으로 근로시간이 긴 제조업의 취업비중이 떨어지고 있음에 비추어 불완전 취업의 비중도 이에 따라 높아진다고 봐야한다.
이러한 고용현실의 변화들은 앞으로의 고용대책이 종전보다 더욱 강력하고 정밀해야 함을 말해준다. 대책의 내용은 실업의 규모뿐만 아니라 고용구조의 동향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근거로 할때만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당국은 산업구조 조정과 관련된 당장의 고용현안,즉 서양산업의 실업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한편으로 임금의 가격기능을 살려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이 노동시장을 통해 자동조절 되도록 하는 여건의 조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모든 악성의 실업사태에는 임금의 경직성이 화근이 되고 있음을 눈여겨 봐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