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정보시대의 정신건강|백석기<한국정보문화센터 기획연구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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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근 영화 가에는『미저리』『양들의 침묵』같은 병적 이상심리를 다룬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인 유행이라기보다는 변해 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뚜렷한 징후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산업사회가 물질의 풍요를 가져왔다면 정보사회는 지식정보의 범람시대를 열어 놓았다. 이런 환경을 만든 일등공신은 물론 컴퓨터다. 컴퓨터는 인간의 기억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수한 지적정보를 찾기 쉽고 쓰기 편하게 수집, 가공해 줄 뿐 아니라 인쇄·편집·방송·통신기술에까지 마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보홍수에 파묻혀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육신도 노동에 너무 혹사당하면 심각한 신체장애를 일으킨다. 병치레에 시달리면서 일찍 늙고 명을 재촉하게 된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란 육체와 달라 쉬는 시간에도 제멋대로 활동한다. 비정상적이며 갈등과 혼란 등 부담스런 사연일수록 정신과로를 재촉하는 특성이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전쟁·기근·살육·파괴·무질서로 얼룩진 충격적 정보가 한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 이것들은 신문·방송매체를 타고 시청자의 두뇌를 종일 두들겨 대고 있다. 그러니 정신인들 온전할 리 없다. 미국은 입원 환자의 25%가 정신질환자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겉으로는 말짱하지만 속으로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1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 세상에 나돌고 있는 정보의 양은 2000년이 되면 1만 배 가량 불어나리라고 한다. 그때가 되면 인간의 정신은 지금보다 몇 배 더 혹사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정신의 휴식과 영양보급을 위해 요가·초월적 명상·마인드컨트롤·기공호흡방법 등을 가르치는 정신건강 연수기관이 대 유행을 하고 있다. TV등 정보매체를 외면하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밝고 긍정적 사고를 가르치는 정신개혁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식사관습을 바꾸고 운동으로 땀을 빼는 육체건강에만 몰두해 있다.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정신의 황폐, 도덕적 타락 등 사회병리의 원인도 물질만능의 배금사조 때문이라고 못박고들 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해 국민들의 정신건강에서 해답을 찾는 발상전환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는「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보다는「건강한정신속에 건강한 신체」를 기르는 운동에 눈을 떠야 할 때다. 그래야만 사회의 생산성이 올라가고 밝은 사회도 자리잡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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