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차자금 의혹 남겨선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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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5면에서 계속>
양 허씨의 입장을 대변하는 Q씨의 회고.
『두 사람(양 허)은 민정수석과 안기부장을 통해 사건내용을 전해 들었습니다. 당시 수사를 담당한 법무부는 사건이 아무 것도 아닌 양「장난」을 쳤어요. 대통령에 대한 보고석상에서도 친인척부분은 물론 사건자체를 축소하려 했다고 생각됩니다. 허씨들은 그때「청와대를 떠나게 되어도 좋다는 각오로」달려들었습니다. 철저치 수사하고, 언론은 일절 통제하지 않고, 대통령의 친척이라도 혐의가 드러나면 구속해야 한다고, 그래서 5공의 깨끗한 면모를 국민 앞에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 사건축소 인상>
검찰에 대해서도 일체의 수사는 청와대와 협의해 가며 진행하라고 엄중히 말해 두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지요. 재벌들의 돈도 물리친 5공 주역들이 한낱 장영자라는 여인한테서 돈을 받아썼다는 의심을 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안 그래도 정권의정치자금줄이 어딘가 하고 다들 주시하고 있던 판에 이런 일로 엉뚱한 의심을 사서는 아무 것도 안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Q씨는 나아가『사건 수습을 위해 두 차례 개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당초 수사에 미온적이었던 법무부장관(이종원)과 검찰총장(정치근)을 물러나게 하는데 양 허씨가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이종원 당시 법무부장관은 이에 대해『일괄적으로 문책개각을 당한 마당에 무슨 작용이고 무엇이고 있었겠는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그는 또『수사축소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검찰은 법대로 수사하고 혐의에 따라 구속여부를 결정지었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치근 당시 검찰총장도 같은 입장이다.
정 전 총장의 회고.
『이·장 사건에 대해서는 이종남 중수부장한테서 처음「정보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정보단계에서 곧바로 수사에 착수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검찰청에는 평소에도 그런 종류의 정보가 많이 들어오기에 일일이 수사하자면 한이 없으니까요. 시일이 더 흐르면서 피해당사자의 진정이 들어와서 수사하게 된 겁니다. 양 허씨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고 그들과 면식도 없어요 .다만 청와대의 기류가 상당히 강하다는 점, 언론보도가 대단했다는 점 등은 기억납니다. 장관과 함께 전대통령께 보고하러 갔을 때 친인척이라도 단호치 처리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때문에 수사검사들에게 철저히 수사하자는 독려를 한 적은 있습니다. 이규광씨에 대해서도 과연 구속요건이 될 만한 혐의인가를 놓고 검찰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었으나 결국 구속 쪽으로 결론이 났어요.』사건규모가 메가톤 급으로 판명되고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장영자 씨로부터 50만원씩을 방은 경찰관 8명이 하루 아침에 옷을 벗는 일도 일어났다.

<말단 경찰도 된서리>
서울 강남경찰서의 경관들이었다. 이들은 장영자씨가「돈 많은 사모님」이던 81년 5월 장씨 집에 침입해 물방울다이아 등 1억2전만 원 어치를 빼앗아 달아났던 강도일당을 끈질기게 추적해 마침내 82년2월에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패물을 되찾은 장씨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수사 팀을 집에 불러『애들 장학금이나 하라』며 50만 원씩을 주었던 것이다. 두 달 뒤 이·장 사건이 터졌다. 장씨의 어음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경관들의 비위사실이 적발됐다. 7명이 면직됐고『너무 억울하다』며 사표 쓰기를 거부했던 1명은 파면됐다. 잘못이야 분명하다지만 어쨌든「몇 천억 원」이 예사롭게 입에 오르던 사건의 와중에서 경관들은 유일하게 정상적(?)인 액수로 인해 문책을 당함으로써 그나마 헷갈리던 서민들의 숫자감각을 되살려 놓았다.
억울하다는 주장은 경관들만이 아니었다. 당사자인 이·장씨 부부를 비롯한 구속 자들, 검찰, 청와대관계자들이 모두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장영자씨는 최근『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이·장 사건이『정치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은 구속될 때까지 부도 한번 내지 않았는데도『물동이를 지고 가던 여인의 발을 걸어 넘어뜨려 물을 쏟게 했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검찰은 검찰대로『최선을 다해 수사했고, 드러난 혐의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법을 적용했는데도 언론이 자꾸 배후다, 정치자금이라는 식으로 의혹을 증폭시키는 바람에 잘된 수사에 흠집이 갔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수사관계자는『전대통령의 입장에서도 억울하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에 엉뚱한 화살>
사건수사 당시 한 검사가「배후」를 캐묻는 보도진의 성화에 시달리다 못해『배후는 언론』이라고 내뱉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과연 그럴까.
당시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장 부부는 15개월 동안 교제비와 생활비로 49억 원을 썼다고 한다. 하루에 1천89만원 꼴이었다.
그 즈음 10년 경력 교사의 월급은 25만원안팎이었는데 이들은 중견교사가 3년7개월간 애써야 벌 수 있는 돈을 단 하루에 썼다는 계산이 된다. 그것도 1년 넘도록 계속해서.
배후가 언론이었다면 그 언론의 배후에는 허탈감과 분노로 말을 잃은 민심이 있었다.<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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