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통화」 실현이 성패 좌우(EC단일시장에 가다: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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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유럽통합 순탄할까/95년엔 16국 가입… 최대경제권으로/미·일 편중 한국시각 유럽에 돌릴때
국경없는 단일시장 출범으로 유럽은 장차 통합유럽으로 가는 중요한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장단일화 이후 유럽통합의 장래는 유럽동맹조약(마스트리히트조약)의 발효 여부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다시말해 EC 12개 회원국가운데 아직까지 이 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영국과 덴마크 두나라의 비준여부가 유럽의 장래에 우선적인 변수로 남아있는 셈이다.
『오는 5∼6월께 재실시될 덴마크 국민투표에서 또다시 비준안이 부결되는 사태는 결코 없을 것으로 봅니다. 비준안의 재부결은 EC와의 완전결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국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미국과 유럽사이에서 양쪽을 끊임없이 저울질해온게 영국의 자세였다고 할때 결국 영국은 유럽을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지난 3년간 브뤼셀에 있는 EC대표부에 근무하며 유럽의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관찰해온 외무부의 이혜민서기관은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연내 발효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EC는 또 올부터 스웨덴·핀란드·오스트리아·노르웨이 등 4개국과 EC가입 교섭을 시작하게 된다. 그 협상이 오래 걸릴 이유는 없으며 연내에 교섭이 끝나 내년중 각국별로 비준절차를 마치면 늦어도 95년을 전후해 EC회원국은 16개국으로 늘어나게 될 거라는게 브뤼셀에서 만난 EC관계자들의 공통된 전망이었다. 이와 함께 EC 12개국과 EFTA(유럽자유무역연합) 7개국간에 상품이동에 관한 국경철폐를 목적으로 한 EEA(유럽경제지역)출범이 스위스의 비준부결로 다소 지연되고 있긴 하지만 늦어도 올 하반기중에는 출범,상품시장의 단일화는 동구를 제외한 거의 유럽전역으로 확대되게 된다.
이 서기관은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따른 유럽통합의 요체를 ▲통화단일화 ▲외교·방위분야 공동정책 ▲내무·사법분야 정책협력 등 세가지로 정리하면서 그중 핵심은 통화단일화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금세기말까지 EC가 달러의 지위를 능가하는 단일통화를 갖게 될지에 유럽통합의 성패가 달려있다는게 그의 진단이었다.
그는 또 흔히 말하는 유럽합중국과 미 합중국의 근본적 차이는 이른바 보조성의 원칙(Subsidiarity)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유럽통합의 실현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국내에는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그만큼 국가 절대주의적 사고에 젖어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유럽통합은 자연스런 추세며 절박한 필요성의 산물입니다. 그런점에서 비록 앞으로도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통합의 큰 흐름은 계속 이어져 나갈거라는게 개인적 소신입니다.』 외무부내에서 EC통으로 꼽히는 이 서기관의 확신이었다.<파리=배명복특파원>
◎권동만주EC대사 인터뷰/어떤 형태로든 통합은 될 것
­EC단일시장 출범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단일시장은 유럽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길 밖에 없다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 출발한 것입니다. EC 12개국 사이의 국경을 없애고 사람과 상품·서비스·자본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채택된 2백82개의 입법조치는 현재 EC차원에서 95%의 진척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93년 1월1일이 단일시장 출범일이라 하더라도 이미 시행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올들어 갑자기 무슨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일시장 자체도 1백%짜리는 아닙니다. 사람의 자유이동 같은 것은 아직 완전히는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봐서 당초 EC집행위가 생각했던 대로 잘 가고 있다고 봅니다.』
­단일시장 출범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까.
『부정적인 면도 있고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단일시장은 자기네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남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겠어요. 그렇게 볼때 역외국과의 교역에서 EC의 이익을 더 많이 대변하려 들 것이고,역외 상품에 더 많은 제한과 통제를 가하려 들거라는 점은 부정적인 면입니다. 그러나 국경이 없어진 결과 일단 이 지역에 상품만 가져오면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어 수출단위비용이 줄어들게 될거라는 점은 긍정적인 면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장기적으로 유럽통합의 장래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12개 단위국가로는 어려우니 합쳐야 한다는 기본생각에는 유럽사람 대부분이 찬성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게 과연 쉽게 되겠느냐는 의구심이 일부에서 있어오던 차에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을 계기로 이러다가 주권국가가 다 없어지고 EC 집행위가 다 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지요. 필요에 의해 통합을 추진하는 이상 통합을 하긴 해야겠지만 각국 고유의 아이덴티티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인간적 미련이 남아있는 셈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통합이 되긴 될겁니다. 그러나 통합의 강도와 실현 시기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럽통합에 대한 국내의 대응과 관련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국내의 시각이 여전히 미·일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습니다. EC통합으로 유럽은 미·일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경제권으로 발돋움하고 있는데 수출해 먹고 사는 우리로서 과연 유럽을 무시하고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도 국내의 시각은 아직도 미·일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문화·언어·관습 등 장벽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브뤼셀=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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