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경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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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민족에 있어서의 최대 명절은 뭐니뭐니해도 설날과 8월 한가위(추석)다. 차례·성묘·세배·선물 등 명절에 따른 나름대로의 행사도 많아 가정마다 1년중 가장 씀씀이가 많은 것도 명절때다. 추석때 음식에 드는 비용이 가장 많은 반면 설날에는 새 옷과 새배돈에 소비가 많아지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어린이에게 색동옷을 입히고 어른들이 한복을 새로 해입는 것은 해가 바뀌어 새로운 기분을 만끽하자는데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추석이 고유명절로서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겨레의 축제가 되어 있는 반면 설날은 오랜 기간동안 따돌림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구한말인 1895년 양력이 채택되면서 신정과 구별되는 구정으로 빛이 바래기 시작했고,일제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설을 쇠는 사람들이 핍박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설날이면 학생들의 도시락을 조사해 제사음식을 싸온 학생에게 벌을 주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설날을 「민속의 날」로 지정해 하루를 쉬게한 것이 85년의 일이었으니 설날은 무려 90년간을 음지에서 결정권가진 사람들의 눈치만 살펴온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날은 언제나 한민족의 최대 명절로 버텨왔다. 「민속의 날」로 지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국민의 60%이상이 설을 쇠ㅆ으며,그 이후로 차츰 높아져 「설」의 명칭을 되찾고 사흘간 연휴키로 결정된 89년 이후에는 93%로 급격하게 치솟았다.
금년처럼 신·구정연휴가 1월에 함께 끼여있는 경우엔 생산에 차질을 초래해 경제의 흐름을 끊는다는 폐해도 지적되고 있지만 2중과세에 의한 과소비도 경제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신정이나 설을 다만 연휴의 개념으로만 받아들여 스키장·콘도·온천 등의 행락시설만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설날이 전통적 명절로서 차츰 퇴색해 가고 있음은 한복이나 다기·제수용 음식들의 수요가 매년 줄고 있다는데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젊은층의 가정이 늘어나고 제사·차례 등의 명절행사를 간소하게 치르려는 일반적 풍조에도 원인이 있다지만 설날 연휴에 행락시설만 특수를 누리고 있는 현상은 아무래도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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