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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소환 무서워 화장장 못 지으면 주민만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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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시행된 주민소환제가 화장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을 1호 대상으로 지목하고 적용할 조짐이다.

 주민소환은 지방자치법을 근간으로 자치단체장이 지방행정을 민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주민이 견제하고 감시하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자치단체장의 사무 처리가 법령을 위반하거나 공익을 현저하게 해친 경우 주민이 직접 참여해 지방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을 지키자는 최후 수단이다.

 그러나 지자체장이라면 당연히 중장기 수급 계획을 세워 추진하도록 의무화돼 있는 장사 시설 건립에까지 주민소환제가 적용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 주민소환이 남용될 경우 자치행정의 발전을 저해하고, 이미 예고된 ‘화장 대란’을 막을 정책적 추진 의지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국내 인구의 절반이 집중돼 있는 반면 화장장은 전국 47개소 중 고작 4곳만 있다. 2030년에 이르면 현재 화장 능력의 3배가 필요해지기 때문에 새로운 화장장 건립은 지방정부의 경쟁력 제고와 종합적인 지역 발전을 위해 시급하다. 현재 수도권에서는 서울·하남·부천 등이 화장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최근 대법원 승소판결에 따라 원지동 추모공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서초구민의 반대가 거세 앞날이 불투명하다. 부천 역시 도시계획중앙심의위가 화장장 건립을 심의 중이지만 갈 길이 멀다. 극렬한 주민 반대에 부닥친 하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다가 수도권 내 화장장 건립은 사실상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화장장 건립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의 논리는 환경오염과 집값 하락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도 얼마든지 친환경적인 화장장을 건립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는 많다. 가까운 일본 고시가야시 화장장은 현대적 최첨단 시설로서 국내외 방문자가 늘고 있다. 이는 화장장 안전성에 대한 주민 신뢰가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집값 하락도 막연한 걱정일 수 있다. 서울시의 벽제 승화원과 용미리 시립묘지 인근의 부동산 시세는 주변 인근 지역보다 낮지 않다.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에도 장사 시설 주변 부동산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자료는 없다.

 주민들이 화장장 건립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주민 의견을 무시한 자치단체장의 ‘독선 행정’에 있다. 화장장 건립은 큰 차원의 정책 과제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정책 수행상의 일은 주민 소환의 일반 사유와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

 화장장 건립은 복지사업이자 시민편의를 위한 생활개선 사업이다. 화장장 건립을 추진 중인 자치단체장들을 무조건 주민 소환 대상으로 몰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주민 소환이 남용될 경우 그 칼끝은 결국 시민을 향할 수 있다. ‘화장 대란’에 의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안우환 동국대 생사의례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