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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찾기 바쁜 6공 고위직들/누가 남고 누가 떠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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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연구소 차려 외교지원 구상/노 대통령/일부는 재기용 겨냥 동분서주/전문지식 살려 새 진로 구상도
절간처럼 변한 청와대지만 퇴임을 불과 한달여 앞둔 노태우대통령은 여유를 잃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떠날 준비와 각오를 해왔고 민주화·북방외교 등에 대한 나름의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보좌했던 많은 청와대와 정부관계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상당수는 합격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들처럼 초조와 긴장속에 김영삼 차기대통령정부의 조치를 지켜보고 있다.
일부 고위 공직자들은 체면도 잊은채 줄대기에 열을 올리는 등 연명책을 찾아 이리저리 뛰고 있다.
○비정치적 영역 국한
○…노 대통령은 2월25일 퇴임후 보통사람으로 지낼 것을 공언해 왔고 또 그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전직 국가원수들의 기구한 말로를 뼈저리게 보아온 노 대통령은 퇴임후 평범한 야인생활을 누리는 것 자체가 커다란 정치발전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관행을 세우겠다고 늘 생각해 왔다.
노 대통령은 야인생활을 하면서도 재임중의 경륜을 살려 국가이익의 수호 및 발전에 적극 일조하겠다는 생각이다.
새해들어 각계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고별오찬 등을 나누고 있는 노 대통령은 기회가 닿는대로 『퇴임후에도 나라를 위해 내가 도울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할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전제가 있다. 「활동」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로서 비정치적 영역에 국한한다는 것이다.
또 이같은 제한적 참여도 퇴임후 1년정도가 지난후에야 시작하겠다는 점이다.
퇴임후 당분간은 연희동사저에서 노모를 모시고 조용히 지낸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그가 야인으로 돌아가면 즐기는 테니스 골프 등 운동과 회고록 정리 등이 주요 일과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1년여 지내면 국제올림픽위원(IOC)으로 활약하거나 연구소개설 또는 대학총장 등으로 봉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올림픽개최국인 우리나라에는 IOC위원이 추가할당될 여지가 있고 사마란치 IOC위원장도 일찍이 이를 노 대통령에게 권유했다는 후문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물론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연구소를 차려 국제관계나 환경문제를 다루면서 외교를 측면지원하고 국제적인 난민구제사업 등에 기여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백출하는 퇴임이후의 활동방안 가운데 확실한 것은 세계의 전직대통령·총리들의 모임인 국제원로모임의 회원으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활동영역·시점이 미정인 상태에서 일단 윤석천 제1부속실장(1급)·김종기수송과장·노문성행정관을 전직 국가원수예우에 관한 법률규정에 따라 계속 근무할 비서관으로 내정해 두고 있다.
그러나 정해창비서실장·이현우안기부장·최석립경호실장·안교덕 민정·김종휘 안보·이병기 의전·김재열 총무수석 등은 측근으로 한동안 뒷바라지를 맡게 된다.
○별정직들 조마조마
○…노 대통령의 퇴임이 임박해짐에 따라 청와대 비서실은 제각기 갈길을 찾느라 분주하다.
정해창비서실장은 미련없이 공직을 떠나 6공 뒷일이 정리되면 변호사사무실을 낸다는 구상이다.
서동권정치특보는 김영상대통령만들기의 공에도 불구,전직 안기부장의 경력때문에 새정부에서 당장 자리를 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정원식 전총리(인수위원장)의 경우처럼 새 정부의 위기때 위기내각에 참여할 소지는 있다.
김중권정무수석은 설날이 지난뒤 민자당에 복당,정당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변호사개업은 하지않는 대신 쇄도하고 있는 출강요청중 한곳을 택해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14대총선 낙선으로 소홀해진 지구당(울진) 관리에 힘쓰겠다는 각오다.
이진설경제수석은 새 정부가 기피할게 뻔하므로 다음 자리는 아예 포기하는 것같다.
안교덕민정수석은 노 대통령과 육사동기생으로서 노 대통령의 말벗이 될 것으로 보이며 김종휘외교안보수석은 한동안 쉰 다음 국내외에서 강의·강연 등을 할 계획이다.
이들과는 달리 차관급인 심대평 행정·김유후 사정·김학준 공보·이병기 의전수석 등도 비교적 젊은데다 전문지식과 상처받지 않은 이미지 등으로 새정부에서도 기용될 가능성이 있다.
충남지사·총리행조실장을 지낸 심 수석은 중앙행정능력과 원만한 인간관계 등으로 중용될 가능성이 없지않다.
김유휴사정수석은 일단 공석중인 서울고검장으로 검찰에 복귀할 것으로 보이는데 김 차기대통령도 후보경선·대선때의 호의를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 공보수석은 주요국대사 전출설이 나돌고 있으며 이병기 의전수석과 더불어 YS대통령 불가피론을 지지해온터라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병기수석은 노 대통령의 분신이라는 내외의 시선을 의식,차기정부에 참여하기를 극구 사양하고 있으나 새 정부 핵심들의 권유로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공직에 적을 걸어둘 것 같다.
김 차기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지지를 자신에게 끌어들이는데 기여한 이 수석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수석에 대한 배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수석비서관들은 나름의 진로를 정해두고 있지만 대다수의 1∼3급 비서관과 행정관·직원들은 막연한 상태다.
57명의 비서관중 각 부처에서 파견돼온 39명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신분보장이 전혀 안되는 18명의 별정직들은 조바심이 클 수 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그래도 일부는 잽싸게 청와대를 벗어나 새정부에서도 가능성 있는 안전지대로 피신하거나 할 준비가 돼있지만 그렇지 않은 비석관이 대다수다.
민병석 외교·이정하 공보·박영훈 사정·김종대 경제(보사)·박원출 민정·조건식 실장실비서관 등이 외국대사나 소속부처 실·국장,조정관 등으로 나갔고 S비서관 등은 해외연수를 떠나기도 하는 등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이진무경제비서관처럼 재무부 제1차관보로 내정됐다 재무부 사무관들의 집단반발에 부닥쳐 좌절된 경우도 있어 일반직들도 안심을 못하는 상태다.
이러다보니 일찍이 자리를 챙겨 나간 비서관에 대한 선망과 질시가 뒤얽혀 있는데 사정이야 어떻든 이들 모두가 TK 또는 경기고출신이라서 뒷말을 남기고 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작년 결성된 6공비서관출신 모임인 청우회(회원 1백10여명)도 분위기가 탁한 실정이다.
한편 경호실의 경우도 일대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차기 경호실장과 함께 지난연말 차장으로 기용된 장호경씨(육사20기)의 계속 기용여부가 관심사다.
장 차장은 기무사참모장출신으로 군내부는 물론 대민업무에도 밝아 차장 재임명이나 안기부 요직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있다.
○환심경쟁 인애보고
○…갈피를 못잡기는 행정부 고위직도 마찬가지.
중립선거 내각을 이끌어 평가를 받은 현승종총리를 비롯한 여러 각료들은 더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적잖은 각료와 차관급들은 새정부에서의 기용을 기대하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
현 총리는 한림대교수로 돌아가기로 했으며 백광현 내무·이정우 법무장관은 변호사업무를 재개할 계획이다.
직업관료출신중 이상배서울시장 등 몇몇의 재기용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으나 그 폭은 좁을 것이라는게 일반적 관측. 이수정 문화·송언종체신장관 등은 미련없이 떠나기로 하고 있다.
이 장관은 노 대통령 회고록작성을 도울 예정이며 송 장관은 변호사개업을 위해 사법연수원에 입교할 계획이다.
송 장관은 63년 제2회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나 행정공무원으로 머무르면서 2년기간의 연수원을 이수치 않았기 때문에 뒤늦은 입교를 준비중이다.
그러나 일부는 체통도 있고 새로운 자리를 따내기 위해 여념이 없는데 「○상궁,△내관」 등의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주변에서 앞뒤 안가리고 줄을 찾아 뛰는 경제부처의 ○장관,△장관을 이렇게 부르고 있다. 관계자들은 대통령직인수위에 대한 정부업무보고가 환심사기 경쟁장이라는 지적은 한치도 틀림없는 말이라며 쓴 웃음을 짓고 있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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