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아의 말하기 칼럼] 신중해야 할 딱딱한 말하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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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27면

제도나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딱딱한 말하기엔 나름대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여섯 가지 논리적인 고려사항이 필요하다(말하기 교육에서는 이를 대안 제시 토우피라고 한다).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문제(Problem) 자체다. ‘나는 연인이 있는데도 무척 외롭다’는 고민을 예로 들어보자. 연인과의 관계를 끝내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면 무엇이 문제일지 생각해본다.

둘째는 문제의 심각성(Significance)이다. 외로움이 사무쳐서 정말 못 견딜 지경인가. 문제 없는 인간, 문제 없는 제도, 문제 없는 정책은 없다. 과연 나의 외로움은 나에게 있어서 다른 문제에 앞서 가장 먼저 대안을 찾아야 할 절박한 문제인가.

셋째, 본질성(Inherency)이다. 내가 직시하고 있는 외로움이란 문제가 과연 이 상황의 본질적 문제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나의 외로움이 이 관계로부터, 그 사람(연인) 때문에 생긴 것인가. 혹시 나의 다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천성적으로 외로움을 더 민감하게 느끼는 성격 탓일 수도 있고, 복잡하게 얽힌 다른 관계들 때문일 수도 있다. 일이 만족스럽지 않아 직장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외로움으로 잘못 느끼는 것은 아닌가. 이럴 경우 연인과의 관계를 끝낸다고 해서 나의 외로움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다른 연인을 만난다 해도 새로운 관계에서 오는 열정을 잠깐 느낄 뿐 이내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넷째, 해결력(Solvency)이다. 관계를 끝내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보겠다는 대안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외로움이 연인과의 관계 탓이라면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찾는 대안이 잠재적 해결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다섯째, 실현가능성(Workability)을 생각해야 한다. 그 연인이란 남편이나 아내일 수도 있다. 이혼이란 죽음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실현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런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십자수나 검도를 시작해 거기에 몰두함으로써 외로움을 잊고 지내도록 애쓰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도 변할 수 있고 상황도 변할 수 있기에 현시점에서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영원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부작용(Disadvantage)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별에서 오는 깊은 슬픔과 허탈감이 부작용이랄 수 있다. 부부일 경우 자식 문제와 사회적 이목 등 부작용이 만만찮다. 잃을 것과 얻을 것을 비교해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 얻을 것이 많을 경우 부작용은 지불해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대입정책을 둘러싼 최근 정부와 대학총장 간의 심각한 갈등도 마찬가지다. 교육은 국민 모두의 문제이며 최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심각한 문제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대학에 강요하고 있는 정책이 문제의 정곡을 짚고 있는지, 해결력이나 실현가능성은 있는지 등을 엄격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대입제도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은 아무래도 교육에 내재한 본질적 문제가 아닌 듯하다. 좋은 대학 가면 돈을 잘 벌고, 돈이 있으면 권력과 명예가 함께 주어지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대입제도로 풀려는 시도는 어설퍼 보인다.

유정아씨는 현재 KBS-1FM ‘FM 가정음악’을 진행하며, 서울대에서 말하기를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거쳐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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