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콩쿠르 벽은 높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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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02면

“모스크바에서의 연주가 가장 떨린다”고 말하던 피아니스트 임동혁(23)씨. 자신이 10년 동안 공부한 이 도시에서 결국 쓴잔을 마셨다. 30일 발표된 제13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 4위는 임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이 콩쿠르를 제외한 세계 주요 콩쿠르 상위 입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던 임씨는 이번 도전에서 3위 안 수상에 실패했다. 쇼팽·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이어 ‘3대 콩쿠르 입상’의 대기록 달성 기대가 좌절돼 실망한 모습이었다.

‘클래식 스타’ 임동혁씨 피아노 부문 4위 … 1위 없는 2·3위는 모두 러시아 출신

그는 지난달 27일 피아노 부문 결선 진출자 6명 중 첫 번째로 연주한 후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희망을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1위 없는 공동 4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벽은 높았다. 그는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위를 차지했고, 2003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는 3위 수상을 거부했다.

임씨는 최종 결선에 오른 6명 중 국제 콩쿠르 경험이 가장 많았지만 노련미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4만여 명의 팬클럽 회원을 몰고다니는 ‘클래식 스타’도 결국 순위매김을 당해야 하는 콩쿠르장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최종 심사 결과가 난 뒤 임씨는 “경쟁자들과 비교해 내가 가장 무난한 연주를 했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좀 아쉽지만 받아들이겠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그는 “어차피 마음을 비우고 출전했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섭섭하지만 4등이라도 줬으니까 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심사 결과에 다소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내비쳤다.

“이번에 2등과 3등을 차지한 러시아 피아니스트는 연주 도중에 곡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나만 아무 사고 없이 가장 무난하게 연주를 마쳤다. 3등 수상자의 경우 정상적으로 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임씨는 ‘한국 음악인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한국 연주가의 수준은 세계 일류다. 하지만 외국인의 실력을 이해하려는 (심사위원의) 수준은 3류”라고 심사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또 “심사위원단 15명 가운데 4명이 러시아인이며 이는 공정하지 못하다. 러시아 측이 2002년 피아노 부문 우승을 일본에 빼앗긴 뒤 이번 대회에서 되찾으려는 생각이 강했을 것”이라면서 “1등을 내지 못한 것은 주최 측이 러시아인에게 1등까지 주기에는 그들의 실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대회 참가는 피아노와 좀 더 친해지기 위한 계기였다”면서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는 마음으로 등수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정신적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공부를 계속하겠다. 콩쿠르는 3대 국제대회에 모두 참가해 본 만큼 출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순위 결정 어떻게 했나=6월 29일 오후 11시 심사위원 대기실. 1차 예선부터 3주간의 콩쿠르를 함께한 피아노 부문 심사위원 16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 피아니스트 백건우씨 얼굴도 보였다. 각자 매긴 1~6위 결과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이 중 14명의 심사위원이 최고로 친 연주자는 미로슬라프 쿨티세프(22). 국제 콩쿠르의 경험이 없는데도 뛰어난 테크닉과 음악성으로 객석을 놀라게 한 젊은 연주자로 이미 입소문이 났다.

임동혁과 세르게이 소볼레프(25·러시아)에게 공동 4위를 수여하는 것도 심사위원들은 거수로 결정했다. 임동혁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연주에 대해 일부 심사위원은 “라흐마니노프답지 않았다”고 혹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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