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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人의 목욕! 훔쳐보기 최절정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여자가 남자 앞에서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아름다운 몸매를 봐달라는 욕구의 표현이자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자는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성일지라도 목욕하는 모습은 남자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목욕은 여자에게 은밀하면서 비밀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에 남자에게 숨기고 싶은 일 중 하나다. 남자는 목욕을 세안처럼 하지만, 여자는 목욕을 하나의 종교의식처럼 한다. 목욕은 여자가 아름다움을 뽐내기 전에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테피다리움에서>
로렌스 앨마 테디마
1881년
나무판에 유채
24㎝×33㎝
레이디레버아트갤러리 소장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의 완벽한 아름다움만 보여주기를 원하지,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한 준비 단계는 보여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때밀이 타월로 구질구질하게 목욕하는 모습까지 보여 신비스럽게 생각하는 남자의 의식을 깨우칠 필요는 느끼지 않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 앞에서 목욕하는 것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뽐낼 수 있는가 충분히 연구하고 검토한 결과다.

여자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영화처럼 장미꽃잎이 넘실대는 욕조에서 와인 잔을 들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사랑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서만 여자는 남자 앞에서 자신 있게 욕조에 앉아 있을 수 있지, 지저분한 몸을 씻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가장 호기심을 느끼는 곳도 목욕탕이다. 특히 청소년 시절 한 번쯤 여탕을 훔쳐보는 상상을 하지 않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목욕탕은 금단의 구역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벌거벗은 여자를 한꺼번에 여러 명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호기심이 당긴다.

어린 시절, 남자도 피할 수 없었던 일 중 하나가 어머니 따라 여탕에 가는 일이었다. 같은 반 여학생이라도 만날까 노심초사하던 부끄러운 기억만 있지, 자라면서 여탕의 풍경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누구나 한 번쯤 여탕에 가 보았겠지만 나이 들어서까지 그것을 기억하는 경우가 없다.

▶<터키탕>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863년
캔버스에 유채
지름 198㎝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관음증 자극하는 목욕 장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정말 뻔뻔할 정도로 볼 수 있겠지만, 어린 시절의 특권은 없어지고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돼버렸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도 목욕하는 여자에 대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시대를 불문하고 여인의 목욕하는 장면은 에로틱한 상상을 자극하는 소재다. 화가는 상상하던 목욕탕을 그림으로 솔직히 드러내고 있다. 목욕하는 여인들을 즐겨 그렸던 화가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다.

젊은 시절부터 목욕하는 여자에게 흥미를 느낀 앵그르는 18세기 무렵 터키 주재 영국대사 부인이 쓴 <터키탕 견문기>를 읽고 이 작품을 제작한다. 앵그르의 <터키탕>은 그의 말년의 작품이다.

누드의 정물화로 불릴 만큼 많은 누드의 여인이 화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여인들의 관능적 몸을 표현한 <터키탕>은 앵그르 작품 중에서는 드물게 구성 자체가 공상적이다.

터키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앵그르는 상상으로 할렘의 여자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원래 이 작품은 사각형 캔버스에 그렸으나 원형 캔버스에 제작된다.

그것은 관음증을 자극하는 엄청난 효과를 주었다. 마치 열쇠구멍으로 목욕탕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사물을 볼 때 열쇠구멍으로 본다는 것은 은밀한 것을 훔쳐본다는 의미다.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앵그르는 원형 캔버스를 사용했다.

이 작품에서 악기를 들고 있는 중앙의 나부는 이미 앵그르가 <발팽송의 욕녀>라는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자세를 재현한 것이다. 앵그르는 악기를 들고 있는 여인 오른쪽에 어색할 정도로 관능적 포즈를 취한 여인을 가장 많이 신경 써서 표현했는데, 자신의 두 번째 부인 델핀을 모델로 했다.

그녀 뒤에서 서로 가슴을 만지는 두 명의 여인은 동성애를 암시한다. 왼쪽 끝에 요염하게 서 있는 여인은 처음에는 그려 넣지 않았으나 나중에 작품 구도상 넣었다.

▶<발팽송의 욕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808년
캔버스에 유채
146㎝×98㎝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이 작품 속의 여성들은 남성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목욕하는 모습이다. <터키탕>은 앵그르가 83세에 여성의 누드를 다양한 방향에서 다룬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앵그르는 에로틱한 내용을 더욱 고양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왜곡해 묘사했다.

앵그르가 젊은 시절 목욕하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발팽송의 욕녀>다. 앵그르는 로마에서 유학 2년째이던 28세 때 이 작품을 완성했다. <발팽송의 욕녀>는 목욕하기 전 휴식을 취하는 여인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고개를 돌리고 앉아 벌거벗은 채 머리에 수건을 쓴 여인에게서는 수줍음보다 관능적 느낌이 강하다.

부드러운 불빛 아래 여인은 고개를 돌리고 앉아 있다. 여인은 비만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적당하게 살이 오른 몸매를 지니고 있는데, 팔꿈치에 걸쳐 있는 천은 발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욕조 앞에는 커튼이 쳐져 있고, 여인은 의자인지 침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곳에 앉아 있다.

커튼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시트에 가린 엉덩이는 위만 조금 보이지만 풍만함을 속이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강한 색상은 여인이 쓴 터번 형식의 수건이다. 머리수건의 붉은 색 문양은 하렘이 배경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녀의 머리수건은 이국적 풍경에 매료된 작가의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그녀의 다리 앞에 보이는 사자 머리의 꼭지에서는 물이 욕조로 흘러내리고 있다. 이것은 이 여인이 목욕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시점을 가리킨다.

고전주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이 작품에서 앵그르는 여인의 이상적 육체만 표현했다. 그는 등에 부드러운 빛을 비춰 주름 하나 없는 여인의 이상적 곡선만 강조해 관능적 느낌이 나도록 했다. 이 작품 속의 여인 역시 앵그르 특유의 신체 왜곡을 통해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 여인처럼 편안하게 앉아 있는 자세는 가능하지 않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이 작품은 로마유학 중 배운 모든 기법을 발휘한 초기 작품이다. <발팽송의 욕녀>의 원제목은 <앉은 여인>이었지만, 작품을 소유한 발팽송이 자신의 이름을 붙여 부르면서 작품명이 바뀌었다.

▶<비너스의 목욕>
프랑수아 부셰
1751년
캔버스에 유채
108㎝×85㎝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다른 이의 배우자를 탐하다

앵그르가 현실 속의 여인의 목욕하는 모습을 표현했다면, 프랑수아 부셰(1703~1770)는 신화를 빌려와 에로티즘을 표현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비너스를 표현하면서도 에로틱한 주제를 잘 드러낸 작품이 부셰의 <비너스의 목욕>이다.

비너스의 목욕은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 베네치아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유럽으로 널리 퍼진 주제다. 비너스의 목욕은 대중의 비난을 피하면서도 귀족들의 에로틱한 상상과 관음증을 자극할 만한 소재로 최고였다.

이 작품은 루이 15세 때 유행하던 관능적 주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비너스는 여신의 이미지라기보다 남자에게 사랑받기 위한 모습이다. 비너스는 여성의 미숙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도발적인 여성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비너스의 머리 위에서는 큐피드가 머리를 손질하고 있고, 엉덩이 옆에 있는 큐피드는 진주 목걸이를 잡고 있다. 전형적인 로코코 양식의 호화로운 의자에 앉아 있는 비너스 뒤로 보이는 풍경은 저녁이다.

부셰는 신화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화면 곳곳에 비너스를 상징하는 상징물을 그려 넣었다. 비너스 발밑에 있는 비둘기와 장미 그리고 바다 거품을 상징하는 은색 조개와 진주가 그것이다.

프랑수아 부셰의 작품은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이 벨르뷔 성의 호화로운 욕실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한 그림 중 하나다. 이 작품은 풍부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 등 로코코 양식의 전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남자의 관음증은 때로는 재앙을 부른다. 다른 사람의 배우자에 대한 호기심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구가 더 크기 때문에 넘치는 성욕을 자신의 배우자에게만 베풀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성욕의 굶주림에서 해방되지 못해 남의 배우자를 탐하면 씻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대표적 이야기가 구약성서 ‘다니엘라’서에 나오는 수산나를 좋아한 장로들이다. 이 주제는 결백의 승리를 상징하기 위해 다양하게 표현되기도 했지만 단순히 여성의 누드를 묘사하기 위해 선호하던 주제이기도 했다.

▶<수산나의 목욕>
자코포 틴토레토
1560년경
캔버스에 유채
146㎝×193㎝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로마 목욕탕은 쾌락의 장소?

기원전 490년 바빌론에 유폐된 유대인 중에서 가장 부유한 요아킴과 아내 수산나는 신앙심이 투철했다. 부부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고 있었다. 수산나는 어느 날 더위를 참지 못하고 목욕하기 위해 정원의 문을 닫아걸라고 한다. 유대인들에게 재판관으로 선출된 두 명의 장로는 평소 소송 때문에 요아킴의 집을 수시로 방문한다.

장로들은 수산나의 미모에 넋이 나가 매일 같이 산책하는 그녀를 겁탈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정원에 숨어 수산나가 더위를 참지 못하고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장로들은 수산나에게 성관계를 요구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이에 늙은 장로들은 그녀가 젊은 남자와 정을 통했다고 법정에 고소한다. 누명을 쓴 수산나는 사형에 처하게 됐는데, 이때 그녀를 고발한 장로들의 말을 의심한 다니엘이 나타나 장로들의 거짓을 밝혀낸다.

자코포 틴토레토(1518~1594)의 <목욕하는 수산나>는 성서 이야기 중 장로들이 수산나의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장면을 묘사했다. 성서에는 수산나가 알몸으로 목욕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지 않지만 화면의 극적 효과를 주기 위해 알몸으로 목욕하는 수산나를 묘사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수산나는 물가에 발을 담그고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며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닦고 있다. 장로들은 장미 울타리 뒤에서 그녀를 몰래 바라보고 있다. 몸단장에 몰두하고 있는 수산나 앞에는 은제 향수병, 상아로 된 빗, 실크로 된 숄이 놓여 있다. 그녀가 부유층임을 암시하는 이들 물건은 정숙과 순결을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장미 울타리는 음탕한 마음과 정숙한 마음을 가로막은 장벽을 상징한다. 장로들의 붉은 색 긴 의상은 당시 권력의 상징이었다. 장로들과 다르게 수산나의 몸은 밝게 표현했는데, 대비되는 그들의 색상은 상반되는 도덕성을 강조한다.

틴토레토의 이 작품은 장로들이 수산나를 덮치기 직전의 평온한 분위기를 묘사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성적 묘사를 규제했기 때문에 틴토레토는 수산나의 가슴과 치모를 그리지는 못했다. 수산나의 땋아 올린 금발은 틴토레토가 활동하던 베네치아 여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머리 스타일이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창녀가 활동했던 베네치아에서는 금발 머리가 유행이어서 여자들은 금발로 염색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목욕탕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로마다. 기원전 33년 율리아 수로가 건설돼 물을 자유롭게 쓰면서부터 로마에서는 목욕문화가 발달했다. 공중목욕탕이 대중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자 정치인들은 대중목욕탕을 세워 대중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로마에서 목욕탕은 단순하게 씻는 장소가 아니라 사교와 쾌락을 제공하는 장소였다. 로마인에게 목욕은 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쾌락의 행위였다. 그래서 로마의 부유층은 휴식과 사교의 장소로서 반드시 목욕탕을 갖추어야만 했다. 그러나 로마처럼 수로가 발달하지 못한 유럽의 평민들은 중세에도 대중목욕탕을 자주 이용할 수 없었다.

물이 귀한 중세의 대중탕은 남녀 혼탕이었다. 남녀가 목욕탕에서 눈이 맞아 배우자 모르게 은밀하게 정을 통하는 일이 많았던 대중탕은 성도덕의 문란을 가져와 중세 이후 창녀나 건달 등이 애용하는 장소로 변질했다.

고대 로마시대의 호화로운 목욕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폼페이 유적이다. 폼페이 유적의 발견은 많은 화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19세기는 역사적 주제를 바탕으로 여인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이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던 시기다. 화가들은 앞 다투어 폼페이를 작품 배경으로 선택했다. 에로틱한 화면을 구성하면서도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로렌스 앨마 테디마(1836~1912)는 고대 로마시대의 목욕탕을 가장 많이 묘사한 화가다. 그는 로마에서 신혼여행 중 폼페이 유적에 매료돼 그 이후 작품을 위해 수차례 현지를 방문해 스케치와 드로잉을 했다. 역사와 건축,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테디마에게 폼페이는 인생의 커다란 선물이었다. 그는 현지에서 스케치한 것을 브뤼셀에 있던 자신의 화실에서 완성했다.

테피다리움이란 고대 로마시대의 개인 욕탕이나 미지근한 욕탕을 뜻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개인 욕탕을 뜻한다. 로마시대에는 개인 욕탕인 테피다리움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부유함을 나타냈다.

<테피다리움에서>라는 작품 속 여인은 왼손에 낙타 깃털로 만든 부채를, 오른손에는 몸을 자극하기 위한 도구인 긁개를 쥐고 있다. 곰 가죽을 깔고 누운 여인은 목욕 후 성적 자극을 주기 위해 도구를 쥐고 있는 고급 매춘부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 욕실인 테피다리움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다.

개인 욕실의 고급 매춘부

로마 상류층 여성들은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는 미모와 교양을 갖춘 고급 매춘부가 필요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상류층을 상대하는 최고급 매춘부와 서민을 상대하는 매춘부 그리고 떠돌면서 매춘하는 여인들이 있었다. 상류층을 상대하는 고급 매춘부는 매춘의 대가로 부유층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아 호화로운 생활을 했으며 개인 욕탕을 갖춘 저택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로렌스 앨마 테디마는 처음에는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 작품의 배경을 폼페이 시대를 재현해 제작했지만 후에 아름다운 여성 위주로 주제를 바꾸었다. 이 작품도 폼페이 시대의 목욕이 주제지만 여성의 비중이 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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