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상사부부의 「살신성인」(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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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청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사고때 주민들을 대피시키다 순직한 황종훈상사(36·공군3579 의무대) 부부의 영결식이 열린 9일 오전 10시 청주도립병원 영안실을 가득 메운 장병·친척 등 2백여명의 조문객들은 황씨부부의 안타까운 죽음과 졸지에 고아가 된 준호군(8·청주 덕벌국1)·지영양(5) 남매의 딱한 모습에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황씨와 부인 정양임씨(33)는 불이 난 7일 오전 1시30분쯤 두 남매를 아파트 밖으로 내보낸뒤 화마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전 2시7분 아파트가 폭삭 주저앉기 직전까지 3층복도를 돌아다니며 잠자던 주민 10여명을 대피시켰다.
아파트 전체가 뜨거운 열기와 연기로 휩싸이자 기진맥진해진 황씨부부는 밖으로부터 『건물이 뒤뚱거린다』는 외침을 듣고 빠져나가려다 3층복도가 순식간에 갈라지는 바람에 건물아래로 파묻히고 말았다.
황 상사부부의 「살신성인」소식을 들은 이양호공군 참모총장은 「보훈국가광복장」 추서와 함께 황 상사를 일등상사로 1계급 특진시키고 공군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벌여 준호남매에게 줄 집 한채값을 마련하고 있다.
황 상사는 77년 공군에 입대한뒤 상사로부터는 「성실한 일꾼」,동료·후배로부터는 「의리에 사나이」로 불려 15차례나 사령관 공로표창을 받았던 「빨간 마후라」였다.
평소 『아빠처럼 훌륭한 공군이 되겠다』며 쾌활했던 준호군은 공군이 되겠다』며 쾌활했던 사고당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아빠가 콘크리트더미 속으로 파묻혀버린 현장을 목격한 이후 넋을 잃고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당장 갈곳이 없는 준호남매는 서울 신당동에서 파출부로 일하며 월 5만원의 사글세방에 혼자 살고있는 친할머니 김순희씨(64)가 개학이전까지 돌보기로 했지만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대전국립묘지 유공자 부부묘역으로 옮기기 위해 운구차에 실리는 황씨 부부의 시신이 든 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준호는 말없이 눈물만 떨구었다. 어린가슴에 파인 깊은 상처를 누가 아물게 할 것인가.<청주=김동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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