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우암」주민의 절망(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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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아들을 업은 처가 여동생과 함께 압사한 시체로 콘크리트 속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혼이 늦었던데다 늦게 본 아들이어서 더욱 소중한 가정이었는데….』
7일 오후 9시 충북 청주시 양한성외과의원 302호.
옥상대피중 건물이 붕괴하는 바람에 왼쪽다리 골절상을 입고 입원한 장영규씨(38·미장공)는 어처구니 없는 날벼락 소식에 그저 눈물만 주룩주룩 흘릴 뿐이었다. 『오전 1시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옥상으로 대피하라」고 외쳐댔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생후 두달반된 아들(현태)을 안고 부인 정경미씨(30)·여동생 순란씨(28)와 함께 허겁지겁 옥상으로 올라간 장씨는 옥상에 모여있던 30∼40명과 함께 아래쪽을 향해 『빨리 구조해 달라』고 1시간쯤 외쳤다. 소방고가사다리차가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허둥대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가진 것도 잠시. 『「꽝」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몸이 튕겨 나갔고 정신이 약간 들었을때는 내밑에 3∼4명의 여자가 피투성이가 된채 깔려 있었습니다.』
장씨는 참혹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그러나 고가사다리차가 조금만 일찍 도착했더라도…』를 수없이 되뇌다 아파트붕괴 사실이 현실로 믿어지지 않는듯 『그렇게 큰 건물이 어떻게 힘없이 주저앉을 수 있느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아이를 꼭 대학에 보내자고 아내와 약속한뒤 지난달엔 교육보험에도 들었습니다. 여동생은 지난달 약혼한뒤 4월 결혼식을 앞두고 준비중이었고요….』
지난해 4월 결혼한 장씨가족의 꿈이 단란했던 보금자리와 함께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어럽게 마련한 15평짜리 작은 「내집」이 오히려 끝없는 고통을 안겨주는 통한의 기억이 돼버린 것이다.<최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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