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위조와 싸우는「돈의 예술」"|화폐 도안사 조폐공사 김광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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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순수예술가도 장인도 상업미술가도 아니면서 이 모두의 속성을 골고루 지닌 직장인. 화폐 디자이너 김광현씨(45·조폐공사)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극도 보안」속에서 지폐나 동전의 그림·문양을 구상하고 이를 사진처럼 세밀히 그려내는 화폐 디자이너의 작업광경을 지켜보면 묘한 기분마저 든다. 경력 10년은 돼야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초 전문성과 나름대로의 창작성을 감안하면 화폐 디자인을 예술이라 못할 바도 없을 것 같다. 하나 지폐 위조 범이라는「적」을 상대해 작업해야 한다는 것이 예술이라기에는 너무 각박하다.
상업성을 기준으로 하든 예술성을 잣대로 하든 화폐의 수준은 디자인·용지·잉크의 3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이중 화폐 디자인을 흔히들『화폐 제작의 꽃이요, 출발점』이라고 한다. 특히「국적」있는 화폐를 만들어 내는 것은 디자이너들의 몫이다.
『화폐만큼 한나라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중상품도 드물 것입니다. 바탕 디자인으로 사용되는 문양이며 인물·경치 등 화폐에 그려진 그림들은 모두 그 나라 국민의 정서를 반영합니다.』 김씨는 화폐의 이같은「국민적」성격 때문에 틈나는 대로 우리의 전통문양이며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고증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지난 74년 중앙대 공예학과 졸업과 함께 화폐 디자인에 뛰어든 김씨는 현재 통용되는 1만원권·5천원 권 등 모두 7종의 화폐 제작에 참여했다. 통용화폐 이외에 88올림픽·대전 엑스포 기념주화 등도 그가 도안한 것들이다. 최근에는 양도성예금증서(CD)도안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뿐 나날을 보냈다.
김씨는 이 모든 일을「국민경제의 혈액을 내 손으로 만들어 낸다」는 자부심 하나로 처리하고 있다. 『1만원 권을 돋보기로 들여다보십시오. 선의 수가 수만 개는 될 겁니다.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만 가능한 작업이 화폐디자인입니다.』
디자인을 포함, 화폐제작의 키 포인트는 뭐니 뭐니해도 위·변조 방지. 최근 고성능 컬러스캐너(색분해기)의 등장으로 화폐 제작진들은 위·변조 범들과 한층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이고 있다. 얼마 전 1만원 권에 도입된「미 세 문자」「파도무늬」「요판잠상」기술 등도 디자인·잉크·용지기술의 복합체다.
김씨를 비롯한 화폐 제작진은 신권 발행에 대비해 여러 모델을 제작하고 있지만 내용은 최하 대외 비 수준이라 밝힐 수 없다. 화폐 제작에 관여한 사람들이 퇴직 후까지 계속 소재가 파악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폐제작자들이 부업 등을 철저히 규제 받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의 월 급여는 2백 만원에 다소 못 미치는 수준. <김영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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