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베트남 경협시대 “활짝”/역사적 수교의미와 남은 과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투자보장·항공협정 등 체결 눈앞에/민간교류 늘려 「불행한 과거」씻어야
한국과 베트남 양국은 22일 역사적인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한국군의 베트남 내전 참전으로 인해 특별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베트남과 수교하는 것으로 그동안 한국이 추진해온 북방정책은 마무리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미수교국은 이집트·시리아·짐바브웨·쿠바 등만 남게됐다. 우리와 베트남과의 사이에는 「청산해야 할 과거」가 있다.
이상옥외무부장관은 이날 외무장관 회담에서 양국 사이에 냉전의 결과로 『일시적으로 불행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한국정부 고위관리로는 처음 공식적으로 과거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이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베트남 참전은 냉전이 몰고온 「불가피한 결과」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과거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지기 보다는 미래의 우호협력 관계 발전에 노력하자는 말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장관은 이날 수교회담에 앞서 베트남 해방전쟁의 아버지인 호치민의 묘소를 참배,과거사를 정리하고자 하는 상징적인 절차를 밟았다.
양국이 이처럼 화해·협력시대로 진입하는 것은 캄베트남 외무장관의 지적처럼 양국뿐 아니라 이 지역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긴요하고도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오랜 해방전쟁과 미국의 경제봉쇄로 동남아에서 가장 뒤처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교육수준의 인력자원과 풍부한 지하자원 등 가장 급속히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도 갖고있다. 또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다른 동남아가 거의 모두 일본경제에 종속된 것과는 달리 미개척 지대로 남아있다.
최근 미국의 봉쇄정책이 해제될 단계에 이르자 일본도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고 있다.
베트남은 다른지역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인다. 지난 86년에 시작한 도이모이(쇄신) 정책으로 시장경제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국제사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있다.
이점에서 베트남은 한국의 뒤늦은 동남아 진출을 위한 훌륭한 거점이 되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베트남은 내년부터 아세안의 준회원국이 되며,일본에 비해 한국과의 협력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아시아내 강대국의 패권을 적절히 견제하는 남남협력의 모범이 될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기업은 이미 60개사가 진출해 있다. 양국 교역량은 지난해 2백40만달러에서 올들어 9월말 현재 3백34만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96.5%라는 급격한 증가세를 보여,중국·러시아에 이어 북방국가중 세번째로 많은 교역량을 보이고 있다. 대베트남 투자도 허가기준 1억8천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번 수교를 계기로 차관보급의 경제공동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 한 경제 및 기술협력 협정에도 가서명해 경제협력을 확대해 나갈 토대를 마련했다. 더군다나 이상옥외무장관은 한국이 베트남의 경제개혁 정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며,무역·2중과세 방지·투자보장·항공협정 등 경제 관련협정을 조기에 체결해 경제협력을 활성화할 제도적인 기반을 다지기로 했다.
이러한 경제관계의 급속한 접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 남아있다. 그중 하나가 한인 2세 문제다. 현재 정부는 이들이 약7천∼1만5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베트남정부도 정확한 자료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들중 약5%는 장애자로 인도적인 구호활동을 필요로 하고있다.
현재 민간차원에서 이들을 위한 직업훈련원 설치가 추진중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모금으로 내년부터 10년간 3백만달러를 지원해 베트남 한인과 베트남청년 총6천8백명을 11년간 교육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인도적 차원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으며,베트남의 전쟁고아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현재 국방부는 월남전 당시 한국군 포로는 2명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으나 하노이의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사진에도 10여명의 한국군이 포로로 생포되고 있는 사진자료가 전시돼 있는 등 조사의 여지가 있다. 이번 수교를 계기로 한국인 포로와 유해송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양국 국민간의 우호관계다. 한국측은 이날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를 위해 한국의 청년자원봉사단 및 기술자의 파견과 베트남 청년의 한국기술 연수확대 등 인적교류 활성화를 약속했다.
정기노선이 생기고,여행허가제가 완화되면 인적교류는 급속히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양국 국민이 진정으로 과거의 감정을 풀고 화해하고 우호감정을 갖기 위해서는 이같은 관계확대에 앞서 한국정부의 공식언급 수준에 관계없이 한국이 주도적으로 과거사에 대해 보다 냉정하고 정직하게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하노이=김진국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