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파스퇴르硏 설립 합의] "癌 등 하이테크 연구에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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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1일 채영복 당시 과학기술부 장관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파스퇴르연구소 본부를 찾아 필립 쿠릴스키 소장에게 "한국에 파스퇴르 연구소를 세워달라"는 제안을 했다. 유럽 생물학 연구의 최고봉인 파스퇴르의 선진 노하우와 연구소 운영기법을 배우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동안 과기부 장관이 채영복-박호군-오명씨로 바뀌었지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중심으로 꾸준히 협의를 계속했다. 그 결과 올 1월 양해각서 체결에 이어 29일 최종 합의에 성공했다.

파스퇴르로서는 1970년대 이후 고급인력의 미국 유출 등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며 미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진 데 대한 공세 전환의 측면이 강하다. 운영에 필요한 경비 대부분을 한국이 부담하고 노하우와 연구인력만 제공하면 되는 등 부담이 작은 것도 사실이다.

밀고 당기는 협상과정에서 파스퇴르 측이 "싱가포르로 가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싱가포르는 바이오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노벨상 수상자 등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그러나 돈은 있지만 연구를 수행할 만한 인재 풀과 산업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이미 내부적으로 한국을 낙점해 놓은 상태였다는 후문이다. 일본은 돈과 인재가 있지만 유럽과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연구 파트너로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파스퇴르는 지난해 10월과 1월 조사팀을 한국에 보냈다. 이들은 KIST와 생명공학연구원.국립보건원 등을 돌아본 뒤 한국이 공동 연구를 수행할 충분한 능력이 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한국은 세계적인 연구소를 우리 노력만으로 키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선진국의 힘을 빌리는 새로운 형태의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파스퇴르 연구소는 1백50~2백50명의 연구원을 국내외에서 고루 채용할 계획이며 이중 파스퇴르쪽 인원은 10%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달부터 10여명이 프랑스에서 건너와 연구 테마 선정과 연구소 운영의 밑그림을 짜게 된다. 5년 내 별도로 건설할 연구소 입지는 파스퇴르 측이 수도권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최지영.심재우 기자 <choiji@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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